지점장의 구박에도 불구하고 나는 10개의 대리점에 쉬지 않고 매일 나갔다. 그러나 실적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리 쉽게 늘어나지 않았다. 나는 대리점 사장들과 이야기하면 할 수록 각 대리점 마다 보이지 않는 매출에 대한 어떤 벽같은 한계를 느껴야만 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목수로 일하고 계시는 먼 친척으로부터 문을 짜려면 먼저 ‘문틀’을 잘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때 들었던 문 만드는 과정을 보면, 먼저 싸구려 각목으로 문틀을 맞추고 나서, 그 문틀에 맞게 고급 원목의 문을 만드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문틀을 벽에 딱 알맞게 제대로 짜지 못하면 나중에 만든 고급 문이 맞지가 않아, 결국 비싼 문을 폐기하고 다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국 멋진 문이라도 문틀에 맞춰야만 하고, 그 문틀에 따라 크기가 결정되어진다는 것이었다.
나는 한순간 이것이 바로 대리점 사장들의 문제였구나 하고 어떤 깨달음을 느꼈다. 일반적으로 대리점 사장들은 자신의 매출의 한계를 이런저런 비용이나 세금문제 및 시장환경 등의 사정으로 스스로 문틀의 한계를 지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A대리점은 월 3천만원, B대리점은 4천만원, C대리점은 5천만원... 항상 비슷한 수준에서 머물고 더 이상 크게 늘어나지가 않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들은 스스로 그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아니 어쩌면 잠재의식 속에서 스스로 벗어나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항상 장사하기 어렵다고 아쉬운 소리만 하는 것이다. 그들 스스로 이미 얼마짜리 문틀을 짜놨고, 거기에 맞추어진 문은 더 이상 넓어지지 못하는 것임을 잘 모르고 있었다.
나는 대리점 사장들의 마음 속 문틀을 깨부수고 더 크게 만들어야만, 거기에 맞는 문을 더 크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바로 내가 담당했던 대리점 문틀의 규모부터 다시 설계하기 시작했다. 각 대리점이 맡고 있는 지역의 가구수는 얼마나 되고, 소득 수준은 얼마인지를 파악하고 판매 잠재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분석하여, 대리점 당 현재 매출 수준과 미래 잠재수준을 비교해서 매출목표를 다시 잡았다. 이는 회사에서 부여한 매출목표보다 월등히 큰 수치였다.
하지만 대리점 사장들은 자신이 과연 이렇게 많은 매출을 할 수 있겠냐고 오히려 말도 안 된다는 듯이 말하였다. 하지만 나는 진지하게 그 이유를 설명해주며 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의논하면서 대안을 제시하였다. 그러자 가장 큰 걸림돌로 개인종합소득세 문제가 대두되었다. 매입이 너무 많이 늘어서 과표가 늘면 누진세가 적용되어 엄청난 세금폭탄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수억 대의 매출을 올리는 대형 대리점은 유지될 수 있겠는가? 나는 당시 선배들이 맡고 있던 대형 대리점들은 모두 주식회사 법인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법인은 매출과 상관없이 순이익에 대한 세금을 정산하므로, 개인 사업자처럼 과표에 대한 세금부담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간신히 개인 대리점 사장들을 설득하여 대부분을 법인으로 바꾸는 작업을 했다. 대리점 사장들은 서류만 준비하게 하고, 대신 내가 여러 관공서를 돌아다니며 직접 다 처리해 주는 고단한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그들의 문틀의 한계를 깨고 법인으로 전환하는 등의 무지막지한 고생 끝에 결국 나는 담당 대리점 매출을 20~30% 정도의 성장이 아닌, 두 세배의 규모로 비약적인 성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이는 내 인생 최초의 작은 성공 스토리였다. 그때의 희열감을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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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하는 동안 피곤해서인지 다소 신경질적이었던 그가 오늘따라 유난히 밝아 보이는 모습에 박성준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신대리님, 오늘 좋은 일 있으세요? 요 근래 안 좋아 보이시더니 오늘은 뭔가 달라 보이시네요?”
“아니, 별일 없는데?”
신대리는 짐짓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말했지만, 마음 속으로 매번 박성준을 속인다는 것이 미안스러웠다.
-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