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1. 갑작스런 인사발령(1)

신대리는 갑작스런 연락에 어리둥절해 하며, 이것이 기회인지 위기인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남들 다 가고 싶어하는 유명 대기업 전자회사를 3년만에 과감히 때려치우고 화장품회사인 이곳에 들어 온지도 이미 2년이 지났건만, 그 동안 그가 한 모든 노력에 대해 회사는 대부분이 침묵해왔기 때문이다.

"허어~ 이제 와서 마케팅이라니….”

자조 섞인 웃음이 자기도 모르게 베어 나왔다.

바로 한 시간 전, 외근 중에 갑자기 사무실로 들어오라는 윤부장으로부터의 연락에 심상치 않은 뭔가를 느꼈지만, 이런 이동발령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었다. 사실 마케팅은 학창시절부터 그가 원했던 일이었으나, 이 회사의 마케팅부는 자신이 그리던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대리는 그 동안 마케팅부에 대한 불만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소위 회사에서 잘난 사람들이라는 그들의 시장과 어긋나는 한심한 전략들에 휩쓸려, 영업부는 갖은 고생을 해도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였고, 그 책임을 온통 뒤집어 써야만 했다. 그래서 술자리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영업부의 안주거리 중의 하나가 바로 마케팅부였다.

그리고 특히 그는 가장 신랄하게 마케팅을 비판하는 사람으로서, 영업본부 내에선 회의시간에도 한심한 책상머리 작태의 마케팅부를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저격수 같은 존재이기도 하여, 마케팅부와는 더욱 껄끄러운 관계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갑작스런 이동발령은..., 이것이 지금까지 자신이 해왔던 일에 대한 뒤늦은 보상인지, 아니면 시끄러운 놈 입다물게 하려는 극단의 조치인지, 그도 망연자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심 걱정이 앞섰다. 사실 바둑판에서도 훈수는 잘 둘 수 있어도, 막상 직접 바둑을 두면 고수들을 당해내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그리고 지난 5~6년 간 영업부문에서 잔뼈가 굵어 가는 동안, 그는 자신도 모르게 언제 책을 손에서 놓았는지 기억조차도 나지 않았다. 이제 그는 더 이상 대학시절 경영학도가 아니었다. 그래도 남들에게 뒤지지 않을 정도의 좋은 대학에서 경영학과를 졸업한 그였지만, 대학에서 배웠던 마케팅 이론이란 것이 현실 사회에선 거의 쓸모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지 이미 오래였고, 대학 때 배웠던 마케팅 기초 지식조차도 이젠 기억이 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마케팅을 하라는 말에 그는 앞이 깜깜해 오는 것만 같았다.

“부장님! 저는 그냥 영업지원부에 남겠습니다. 갑자기 마케팅이라뇨? 제가 여기서 뭐 잘못한 거라도 있습니까?”

신대리는 볼멘듯한 목소리로 윤부장에게 항의 하듯 말했다. 그리고는 마른 침을 억지로 꿀꺽 삼키며, 가까스로 다시 말을 꺼냈다.

“저는 이곳에서 무척 열심히 일했습니다. 전 직장에서 섣불리 회사를 떠난 후회로 이곳을 저의 마지막 직장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여러 혁신적인 업무를 이루었고요, 특히 제가 만든 대리점 재고관리 프로그램은 제가 계속 업그레이드 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이제 그 동안의 고생으로 저 나름대로 영업지원부에 대한 틀이 잡혀 가고 있는 시점이고 보람도 느끼고 있는데, 마케팅을 새로 시작하기에는 그 간의 노력이 너무 아깝습니다. 게다가 제가 마케팅부와는 그리 좋은 인연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조금 안정이 되었는지 약간 누그러져 있었다.

“물론 신대리가 항상 즐겁게 일하며 매사에 열정적인 것에 나도 반했는데, 나라고 신대리가 다른 곳으로 떠나길 바라겠어? 지금 당장이라도 신대리 없으면 산재한 저 많은 일들을 어떻게 다 풀어나가야 할지 나도 모르겠는데 말이야. 그래서 나도 신대리가 계속 남아야 한다고 주장도 했었지만, 이미 위에서 일방적으로 결정 난 거라 나도 어쩔 수가 없다네.”

윤부장도 사실 신대리가 빠지는 건 전력의 손실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이미 영업총괄 임원인 최이사에게 강력히 항의도 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신대리, 우리회사 마케팅 문제 많은 거 다 알잖아. 네가 그 곳에 가서 이곳에서 항상 말했던 거처럼만 직접 보여준다면, 나도 그게 궁극적으론 영업본부 전체를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하네”

윤부장은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신대리는 전공도 경영학과이니까 쉽게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걱정 말고 자신 있게 일하게. 뒤에서 우리 모두가 도와줄 테니까….”

그리고 일장연설과도 같은 윤부장의 설득이 오랫동안 이어졌지만, 신대리의 머리 속은 혼돈처럼 엉클어져 그의 말은 귓전에서만 희미하게 맴도는 듯했다.

“그럼, 잘 알았지? 그러니 빨리 인수인계하고 다음 주부터는 마케팅부로 출근하게.”

순간 신대리는 꿈에서 퍼뜩 깨어난 듯 정신이 돌아왔다.

“아~~ 네…. 알겠습니다.”

힘없이 죽어가는 목소리가 입에서 기어나왔다. 오랜 시간 항의해봤지만,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후고 더 이상 루미콘 강을 다시 건너갈 수 없는 일이었다.

그 동안 마케팅부의 문제는 뭔지 모르게 시장 현황과 거리가 멀다는 거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경영진은 시장을 잘 아는 영업본부에서 인원을 차출하여 마케팅부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는데, 이는 영업본부의 수장인 최이사의 강력한 주장 때문이었다. 최이사는 이번 기회에 마케팅부가 보다 시장 지향적으로 변하여 판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품기획과 전략이 수립 되기를 기대하였기 때문에, 윤부장도 바로 이런 직속 상사의 강한 의지를 꺾을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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