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3. 갑작스런 인사발령(3)

어느덧 봄도 지나고 학교에는 또 다시 축제가 무르익어 가는 5월, 그는 나른한 오후의 졸음을 깨기 위해 시끌벅적한 교정을 거닐며, 나름 한가로운 자유로움을 만끽하였다. 그러나 캠퍼스 곳곳에 퍼지는 웃음소리와 한껏 젊음을 발산하는 후배들의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아직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에 그의 굳은 입술 사이에도 한숨이 절로 베어 나왔다.

‘이러다 또 떨어지면 어떡하지? 휴~, 부모님께 더 이상 손 벌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유학 갈 형편도 아닌데…, 지금이라도 발벗고 나서서 취직자리를 찾아야 하나?’

그는 이런저런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캠퍼스 구석구석을 꽤 많이 걸어 다녔는지 다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학생회관에 들어서자 그는 두리번거리며 어딘가 앉을 자리를 찾다가, 마침내 이미 여러 학생들이 다녀간 흔적으로 너저분하게 신문들이 널려있는 자리 하나를 발견하였다. 그는 구석 자리에 앉으며 자연스럽게 신문 하나를 주어 들었는데, 다 그렇고 그런 따분한 얘기로 채워진 학교 신문이었다. 신문 머리글자만 일견 흩어 본 그는 따분함에 신문을 접으며 탁자에 던져 놓는 순간, 문득 광고 하나가 그의 눈을 사로 잡았다.

[ 신입사원 모집 - L전자 ] 졸업생이라면 누구나 입사하고 싶어하는 대기업이었다. 
‘어? 여기는 이제야 사람을 뽑나?’

정부는 IMF에서 보다 빨리 벗어나기 위해 전 국민을 상대로 금 모으기 운동을 펼쳤다. 달러로 갚아야 하는 빚은 당시 우리나라 돈으로 갚을 수는 없어도 금으로는 갚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전 국민이 금 모으기 운동에 동참하여 줄을 서서 국가의 빚을 청산하는데 보탬을 주었으며, 정부 주도하에 빅딜(Big Deal)이라는 대기업의 산업재편과 구조조정이 벌어진 끝에, 큰 고통은 있었지만 건실한 기업들은 살아남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IMF 위기도 어느 정도 수그러들자, 기업들도 이제는 사람이 필요해져서 필요한 인원들만 수시모집을 통해 신입사원으로 조금씩 채우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광고란을 찢어 주머니에 쑤셔 넣은 채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공부가 잘 안됐다. 매일 할 일 없이 도서관에서 시간만 때우는 자기가 점점 한심해 보이기만 했다. 게다가 그나마 취직한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계산을 하지 못하고 항상 얻어 먹는 자격지심에, 하루가 멀다 하고 붙어 다녔던 친구들 조차 언제부턴지 모르게 점점 멀리하게 되는 자신도 싫었다. 그러자 갑자기 아까 오후에 주머니에 넣었던 사원모집 광고가 생각이 났다. 그는 얼른 신문광고를 꺼내 펼쳐보며 생각하였다.

‘그래, 어차피 밑져야 본전이다. 되든 안 되든 일단 한번 응시해보자. 이건 어쩌면 하늘이 내게 주신 계시일지도 몰라.’

그렇게 결심이 서자, 그는 다음 날 바로 L전자회사로 달려가서 입사원서를 작성하였다. 대학원으로 도피하는 것보단 가혹한 현실에 부딪쳐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IMF의 그늘이 조금은 물러난 덕분인지, 아니면 그 동안 대학원 공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인지, 의외로 그는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던 대기업에 쉽게 입사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가 배정 받은 부서는 원치 않았던 영업부서였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좋아했던 과목인 마케팅을 회사에서도 직접 해보고 싶었으나, 그 자리는 그보다 더 높은 스펙을 쌓은 다른 동료의 차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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