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12. 마케팅부에서의 첫 시작(5)

1980년대 한국의 가전유통시장은 소위 가전3사라 불리웠던 금성사(LG전자), 삼성전자, 대우전자에 의해 전속대리점 체제로 전국적으로 확장되며 급격히 성장하였다가, 1990년대에 들어서며 정비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즉, 이 시기에 하이마트, 전자랜드21과 같은 양판점에 의한 거래가 처음으로 시작되었으며, 각 가전회사는 기존의 무분별한 대리점 확장에서 벗어나 대리점의 경쟁력 강화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빠른 의사결정과 관리가 용이한 직영점이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90년대 후반의 IMF 사태의 영향으로 대기업인 대우전자가 사라졌으며,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양강체제가 형성되었는데, 이들은 경쟁력이 약화된 기존의 대리점들을 구조조정하고, 제조사가 직접 운영하는 직영점을 더욱 확대하여 나갔다.

또한 이 시기에는 하이마트로 대변되는 양판점의 시장점유율이 크게 증가하게 되어, 그 동안 가전제품 제조회사에 의해 수동적으로 한 가지 브랜드만을 취급하는 대리점 형태에서, 여러 브랜드를 취급하는 양판점으로 유통이 급속히 전환하게 되었고, TV홈쇼핑, 인터넷 쇼핑몰 등의 성장으로 가전유통시장은 제조업체가 아닌 독자적인 전문유통업체가 가전유통을 주도하게 되었다.

제조업체들도 초기에는 다양한 판매라인의 구축과 소비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를 환영하는 분위기였으나, 신 유통업체들의 판매비중은 급증하는 반면 제조업체의 대리점 비중이 급락하면서 문제는 불거졌다. 2000년대 들어 10년 사이에 전자제품 중심의 유통라인을 할인점과 온라인 쇼핑몰에 절반 가까이 빼앗기면서 이들을 견제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급상승하는 시장점유율에 힘입어 가격결정력까지 그들에 의해 좌지우지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삼성과 LG는 공격적이며 대대적인 직영점 강화전략을 구사하여, 프리미엄 제품의 판매를 늘려 매출을 증대하고 수익성을 확보하게 하는 한편, 직영점의 고급화 및 대형화를 위해 강력한 재정지원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전략의 이면에는 삶을 송두리 채 빼앗긴 영세 대리점들도 있었다. 그들은 전재산인 집을 담보로 대리점을 운영하였다가, IMF로 인한 소비위축과 신유통에서의 할인판매라는 두 개의 핵펀치를 동시에 맞고 설 땅을 잃고 쓰러져 갔다. 신대리가 입사한 후 3년 간은 이렇게 가전유통시장에 격동의 폭풍이 세차게 불어오고 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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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도 허지점장의 등쌀에 사무실에서 쫓겨나듯이 뛰쳐 나왔다. 이 일은 분명 내가 할 일이 아니라 선배인 민대리가 해야 할 일인데도, 허지점장은 민대리가 다른 중요하고 바쁜 일을 해야 한다며 내게 일을 떠 넘겨 버렸다. 하지만 그건 핑계일 뿐임을 나는 안다. 같은 경상도 고향 선후배인 그들은 언제나 한통속이 되어 싸고 돌았으며, 언제나 하기 귀찮고 어려운 일은 막내인 내게 떠넘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오늘도 또 하나의 대리점이 문을 닫게 되자, 회사에 갚지 못한 채권에 대한 변재 계획을 받아내야 하는 골치 아픈 일이 나에게 떨어졌다. 문제는 이런 일이 내가 담당하고 있는 대리점이었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으나, 선배가 맡고 있는 잘 알지도 못하는 대리점에 가서, 나는 마치 채권추심인처럼 냉정한 사람이 되어 안면몰수하고 잔인한 짓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항의해봤으나, 소용이 없었다. 허지점장은 무엇이든 까라면 까야만 했다. 그가 곧 이 작은 영등포 지점의 무소불위의 법이었다.

처음 신입사원 때 나는 허지점장의 개인수행비서 같은 존재였다. 커피타기는 기본이고, 은행 심부름, 맡긴 구두 찾아오기, 퇴근 때는 주차 타워에 있는 그의 차를 미리 빼와서 나올 때까지 대기하고 있어야 했으며, 그 무엇보다도 싫었던 건, 그가 명절에 대리점들을 돌며 슬쩍 챙긴 돈으로, 출세를 위해 백화점에서 고급 갈비짝을 사서 윗사람들에게 돌리는 일을 나 혼자서 집집마다 다니며 배달해야 하는 일이었다.

처음엔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러나 반복되는 개인적인 일에 대해 나는 더 이상 할 수가 없어, 큰 맘먹고 이런 부당한 일은 시키지 말아달라고 부탁하였다. 의외로 그는 순순히 받아들이며 별일 없는 것처럼 지나갔으나, 그때부터 내게 이런 보복성 일들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그의 명령을 어긴 죄에 대한 벌은 무척 가혹하였다.

나는 한숨을 크게 내쉬며 대림동에 있는 대리점에 갔다. 그곳에는 이미 2톤 트럭 두 대가 와서 매장의 재고를 싣고 있었으며, 한 켠에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50대 초반의 대리점 사장의 부인이 있었다. 그래도 이들 부부는 10년 간 대리점을 함께 꾸려 나가며, 풍족하진 않았지만 자식들 대학도 보내고 남부럽지 않을 정도로는 살아왔는데, 근처 영등포역에 대규모 백화점과 하이마트가 들어오는 바람에 대리점 문을 닫을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자금이 돌지 않자 그 동안 빌린 빚 때문에 대리점 사장은 어디론가 도망가고 없었으며, 그 아내만이 매장을 지키고 제품을 나르는 인부들을 보며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내가 매장으로 가자 그래도 일면식이 있던 나를 알아본 그녀는 내게 달려들어 양손을 잡으며 사정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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