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13. 마케팅부에서의 첫 시작(6)

"아이쿠... 제발 좀 말려 주세요. 저 TV는 절대 안되어요. 오늘 아침에 팔아서 고객에게 배달해야 하는 것이어요. 저것만은 안돼요... 흑흑...."

막 매장에서 진열되어 있었던 알몸의 프로젝션 TV 하나를 들고 나오는 인부들을 가리키며, 그녀는 내게 하염없이 눈물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 모든 것을 통제할 권한이 없었다. 그들은 이곳 사장이 연락이 두절되자 회사의 명령을 받고 채권을 확보하기 위해 재고라도 가져가는 것이었다. 일개 사원인 내가 그걸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으며, 내 월급보다도 비싼 그 돈을 내가 대신 물어 줄 자신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죄송하다는 말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사모님.... 그러니 얼른 사장님과 연결이 되어야 해요. 그래서 채권변재 계획을 작성하시고 회사에 빚을 갚아야만, 저 제품들이랑 담보로 들어간 집도 찾을 수가 있어요. 이런 상황이라면 회사도 어쩔 수가 없답니다. 죄송하지만 빨리 사장님과 연락을 다시 취해 보세요."

"알아요, 나도 알아.... 그런데 도통 전화가 안 되는 걸 어쩝니까? 그러니 다른 거 다 가져가도 좋으니 저 TV 하나만 놓고 가라고 해주세요. 저건 진짜 오늘 배달해줘야만 해요."

나는 어느 순간 부쩍 늙어버린 그녀의 울부짖음에 그만 마음이 아파, 막 트럭에 실으려는 TV를 내려놓게 하며 인부들에게 말하였다. 

"이건 팔린 거라 카드결재 떨어지면 돈으로 갚는다고 하니까 놓고 가시죠. 제가 회사에 그리 보고하겠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TV 하나만을 남겨 놓은 채, 을씨년스럽게 텅 빈 매장에서 그녀와 마주 앉았다. 한 동안 매장 안은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 아무런 미동도 없이 정적만 흘렀다. 어느 정도 감정이 다스려졌는지 그녀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진 않았으나, 내가 지금 이곳에서 그녀와 무슨 얘기를 더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녀를 달래주고 얼른 남편이 와서 채무를 이행하도록 하라는 말만 남기고 매장을 나왔다.

'휴우....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그리도 공부한 것인가?'

착잡한 심정에 직장에 대한 회의감이 몰려왔다. 그날 나는 담당 대리점들 방문도 하지 않고 회사로 복귀도 하지 않은 채, 한강고수부지에 주차를 하고 하염없이 강을 따라 걸었다. 1년 만에 잃어버린 나의 순수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오늘 있었던 일이 어느새 허지점장 귀에 들어갔는지, 쉬지 않고 울리는 핸드폰을 나는 끝까지 외면할 수가 없었다.

"야~ 임마~~!! 내가 돈 받는 약속 잡아 오라고 했지, 언제 다른 사람 일을 방해하라고 했어? 네 놈이 뭔데 그 비싼 TV를 마음대로 놔두라 말라해? 돈 못 받으면 네 월급으로 물어낼꺼야? 엉~~? 당장 회사로 튀어 들어왓!!"
"네, 좋습니다. 그럼 제가 갚으면 될 거 아닙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나는 울컥하는 마음에 큰 소리로 답변하고 핸드폰을 끈 채, 회사에 복귀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시말서와 함께, 대림 대리점이 채권을 다 못 갚을 경우 TV 값을 급여에서 차감하겠다는 각서를 쓰고 사건을 무마시켰으나, 자신의 명령에 불복한 나에 대한 허지점장의 복수는 그 이후로 더 심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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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리는 이제 무엇이 문제인가에 한 발짝 다가선 것 같았다. 이팀장이 바로 허지점장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2차로 생맥주를 마시고, 3차로 포장마차에서 또 소주를 마시고 나서야, 그는 간신히 집으로 발길을 돌릴 수 있었다. 그는 술에 취해 몸을 비틀거렸지만, 정신은 더욱 맑아지는 것 같았다. 오늘 이팀장 및 다른 직원들과의 여러 대화를 통해서, 앞으로 그가 마케팅부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는 일단 이팀장을 비롯한 전 마케팅 임직원들이 지금까지 실행했던 마케팅 전략에 대해, 외부에서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스스로 너무도 잘났고 잘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회사의 현실이 안 따라 주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우월주의와 피해의식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 변화 하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잘못된 원인을 모두 다른 이들의 탓으로 돌리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가장 큰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자 그 동안 그의 가슴을 짓눌렀던 무거운 짐 하나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그는 술에 취해 무겁게 감기는 눈을 억지로 비벼 깨우며, 지금의 생각을 잠들어 잊기 전에 바로 글로 적었다.

1. 영업현장에서 느꼈던 마케팅의 문제점을 정리하고, 시장에서 얘기하는 우리 제품 및 마케팅 전략에 대한 의견을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다시 듣는다.

2. 문제점뿐만 아니라 우리의 강점이 무엇인지도 함께 조사한다.

3. 최종 정리된 문제점과 회사의 강점을 마케팅 직원들과 함께 공유하고 개선책에 대해 의견을 수렴한다.

4. 수렴된 의견을 실행할 수 있도록 사내 관련 부서들의 의견도 적극 수용한다.

자신의 생각을 적고 나자 그는 뭔가 안심이 되었는지, 옷도 벗지 않고 씻지도 않은 채 그대로 침대로 쓰러져 이내 잠에 빠져들었다. 모처럼 편안하고 깊은 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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