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신대리는 오전 업무를 간단히 정리하고 바로 늘상 해왔던 것처럼 안테나 매장에 방문하겠다는 핑계로 회사를 나와, 회사와 떨어진 조용한 까페를 찾았다. 그는 어제 만든 아미앙떼 현황 및 문제점 리스트를 가지고, 앞으로 이를 입증하기 위해 보강해야 할 자료를 수집할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일단 4P 측면에서 접근해 보기 시작했다.
제품(Product) 측면에서 보면 이미 브랜드별 판매실적 분석 및 제품에 대한 고객 반응 등이 그 동안 잘 정리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다음의 대안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미앙떼가 아니라면, 과연 어떤 후속 브랜드를 출시해야 할지에 대한 답이 없었다. 결국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아미앙떼가 잘 안된 근본 원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조사해볼 필요가 있었다. 먼저 문제를 알아야 해결 방법이 나오기 때문이다.
가격(Price)과 유통(Place) 측면에서는 한 가지만 빼고 더 이상의 조사가 필요 없을 정도로 가장 잘되어 있었다. 장려금 및 할증 정책에 의한 가격할인은 갈수록 심해지고 신유통으로 부각되고 있는 브랜드숍과 홈쇼핑 등 때문에 대리점과 화장품전문점 체제의 붕괴는 더욱 가속화되어 가고 있어, 이를 직영영업소가 대체하고 있지만 이도 오래 가지 못할 상황이다. 결국 직영영업소에 투여된 고정비를 보다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브랜드숍의 직영점으로 전환한 후,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확대하는 방법뿐이 없으며, 이에 가장 필수적인 것이 선발업체와 다른 차별화된 컨셉이 필요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과연 이런 살을 도려내는 듯 치열한 경쟁에서 우리만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신대리의 고민은 항상 여기서 갈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아미앙떼를 대체할 새로운 컨셉의 브랜드를 단순히 제품만 출시하는 것이 아니라, 더 늦기 전에 브랜드숍으로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브랜드숍으로 진출하려면 적어도 300품목의 제품이 필요하므로, 이를 다 개발하려면 기간이 1년은 넘게 걸릴 것이다. 따라서 제품 개발기간 동안에 매장의 이미지를 잡고 인테리어 도안을 완료하여 제품 출시와 동시에 매장을 오픈하면 될 것이다. 게다가 이미 직영영업소가 10개나 있으니, 영업소의 전세금을 빼서 목 좋은 대로변으로 나오면 10개는 다 못해도 그 절반인 5개의 직영매장을 오픈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지금 조사를 통해 제안을 하고 회사에서 바로 받아들여서 개발을 시도한다 해도 내후년에나 제품이 나올 수 있을텐데, 과연 그 때까지 기존의 체제가 잘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그래도 다행히 회사는 오랜 전통있는 화장품회사로써, 오래되었지만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 셀러 (Steady Seller) 브랜드도 여럿 있기 때문에, 비록 어려워지겠지만 2~3년은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본적인 조사 방향을 잡자 그는 바로 간단한 설문들을 만들어, 11월 안테나매장 설문에 현재의 문제점과 새로운 컨셉에 대한 고객의 니즈에 대한 내용을 살짝 포함시킨 한편, 그 밖에 브랜드숍에 대해서는 직/간접적으로 별도로 직접 발로 뛰며 조사할 수밖에 없었다. 조사가 깊이 들어가자면 혼자서 하기에 그리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도 최근 1년 동안 전문적으로 시장조사로에 인맥을 다져온 신대리는, 지방과 수도권 외곽 지역은 영업 동료들을 활용하거나 전화 통화로 조사를 하는 한편, 서울 시내 주요 상권에서는 직접 방문을 통해 조사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조사는 12월 초가 되어서야 마칠 수가 있었다. 무려 한 달 반이 걸렸다. 아무리 요령이 생겼다고 하나, 혼자서 하다 보니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었다. 신대리는 그 동안의 조사도 문제였지만, 앞으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도 걱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만족할만한 데이터를 어느 정도 확보했다는 생각에 그는 마음이 뿌듯하였다. 이런 감정은 과거 전 직장에서 매출이 부진한 작은 가전대리점들을 상대로 매출을 급성장시켰을 때 느꼈던 희열감과 닮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