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성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화해’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화해’는 ‘화장품을 해석하다’라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제품별 유해성분 정보를 알려준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되었다.
2013년 화해가 처음 생길 때부터 나는 이 애플리케이션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해악이 될 것임을 예견했다. 과학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EWG의 성분 유해도 지수 및 제품 유해도 평가방식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조금이라도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에 실린 ‘20가지 주의성분’에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 두 가지 정보가 화해의 바탕 정보로 쓰였다는 사실만으로도, 화해는 틀렸다.
한 언론기사에서 화해 측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신뢰도 높은 정보를 정리해 보여줄 뿐 어떤 제품이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지 않는다. 중립성은 화해가 지켜나가야 할 중요한 가치이다.”
굉장히 멋있는 말 같지만 내게는 발뺌하는 말로 들린다. EWG 스킨딥 데이터베이스가 신뢰도 높은 정보인가? 20가지 주의성분이 신뢰도 높은 정보인가? 이런 비과학적인 정보를 제공하면서 중립성을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1 신뢰도 없는 자료로 소비자 오해 유도
먼저 화해가 구체적으로 어떤 자료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는지 알아보자.
① 대한화장품협회 화장품성분사전
② EWG 스킨딥 데이터베이스
③ 도서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 중 ‘가장 피해야 할 20가지 성분’
④ 식약처 발표 ‘알레르기 주의성분’
⑤ 대한피부과의사회 ‘피부타입별 성분’
⑥ 식약처 고시 ‘기능성성분’
신뢰도 높은 정보를 제공한다고 하지만 위 자료들 중에 정말로 신뢰도가 높은 것은 ①, ④, ⑤, ⑥번뿐이다. ①번은 대한화장품협회가 만든 것이고, ④번과 ⑥번은 식약처가 만든 것이고 ⑤번은 대한피부과의사회가 만든 것이다. 이 정도 전문성과 권위가 있는 집단이 발표해야 신뢰도가 높다고 말할 수 있다.
반면에 ②번과 ③번은 전문성이 없으며 권위와도 거리가 멀다. EWG는 환경단체다. 그것도 화학물질에 대한 편견으로 똘똘 뭉친 단체다. 이 단체는 2000년대 초반에 화장품 속 화학물질이 기형아 출산, 유방암과 자궁암의 증가, 남아의 여성화 현상을 일으킨다는 자극적인 주장을 펼치며 등장했다.
“모유에서 수십 종의 화학물질이 검출되었다”, “신생아 제대혈에서 수백 종의 화학물질이 검출되었다” 등등의 공포 뉴스를 터뜨리며 그 원인을 모두 화장품과 연결시켰다. 이러한 공포 마케팅의 대대적인 성공으로 EWG는 순식간에 수백만 달러를 모금했고 그것이 ‘스킨딥 화장품 데이터베이스’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EWG 스킨딥 화장품 데이터베이스는 화장품에 사용되는 모든 화학물질의 유해도와 모든 제품의 유해도를 알려주겠다는 원대한 포부에 의해 탄생했다. 이들은 FDA가 화장품을 제대로 규제하지 않아서 화장품회사들이 위험한 성분을 마구 사용하고, 위험한 화장품을 만들고 있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들의 주장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렇다. “화장품회사를 믿지 마라. FDA를 믿지 마라. 오직 EWG의 스킨딥 데이터베이스를 확인하는 것만이 당신의 건강과 안전을 지켜줄 것이다.”
대중의 공포를 발판으로 EWG는 순식간에 권위 있는 단체로 둔갑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이들이 만든 유해도 지수는 과학계가 정교하게 만든 위해평가 방식과 동떨어져있기 때문이다. EWG는 화장품이 먹거나 흡입하는 것이 아니라 피부에 바르는 것이라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물질의 안전은 독성이 강한 물질이 들어있느냐 없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들어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는 매우 기초적인 화학상식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발암물질 등급이 어떤 기준으로 분류되고 위해평가에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당연하다.
스킨딥 데이터 자체가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 독성정보와 발암정보 등 온갖 화학물질 정보를 끌어 모아서 화장품성분에 대입시켰으니 수많은 해석의 오류가 탄생할 수밖에 없다. (※국내에도 번역된 <화장품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진실>을 보면 EWG가 탄생한 과정을 자세히 알 수 있다.)
‘20가지 주의성분’도 비슷하다. 화해 측은 이것이 베스트셀러 <대한민국 화장품의 비밀>에 소개되었다는 것만으로 신뢰도 높은 정보라고 판단한 모양이다. 하지만 베스트셀러라고 저절로 신뢰도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다. 이 리스트는 권위 있는 과학단체에 의해 작성된 것이 아니며 과학자, 특히 화장품 화학자들에 의해 검증된 것도 아니다. 두 명의 개인, 그것도 화학물질에 대한 편견이 가득하고 과학 데이터를 해석할 능력이 없는 자들이 작성한 리스트다. (※이 리스트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본지 8월 29일자 ‘당장버려야 할 화장품 블랙리스트-20가지 주의성분’ 참조 http://www.cncnews.co.kr/news/article.html?no=3911)
#2 알레르기 성분 표시는 '위험을 피하라'는 의미
또한 화해는 식약처가 발표한 ‘알레르기 주의성분’을 활용하는데 있어서도 오류를 범했다. 제품마다 이것이 몇 개가 들어있는지 숫자를 강조 표시하여 마치 그 개수에 따라 화장품의 위험도가 판가름 나는 것처럼 오해를 유도한 것이다.
과연 알레르기 주의성분이 1개인 것보다 2개, 2개인 것보다 3개가 위험할까? 그렇게 해석한다면 식약처가 이 리스트를 발표한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화장품에 알레르기 주의성분을 표시하는 이유는 가공식품에 알레르기 성분을 표시하는 것과 똑같다. 가공식품에 메밀, 밀, 대두, 견과류, 복숭아, 토마토 등 식약처가 지정한 21가지 알레르기 주의 원료가 들어있으면 이를 원료표시 맨 마지막 줄에 도드라진 글씨로 표시해야 한다. 이 원료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 미리 보고 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해당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 성분표를 미리 보고 피하게 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이것은 알레르기 성분이 몇 개가 들었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5개가 들었든, 10개가 들었든, 알레르기가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단 1개가 들어있다 해도 그 성분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된다.
이러한 맥락을 무시한 채 알레르기 주의성분의 개수만 강조하는 식의 정보는 소비자에게 오해를 야기한다. 화해가 탄생한 이후로 화장품 소비자들 사이에는 알레르기 주의성분이 몇 개 이상 들어있으면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사고가 퍼져있다. 알레르기가 전혀 없는 사람이 알레르기를 두려워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화해 측은 자신들의 목적이 “정확한 정보 제공을 통해 합리적인 소비를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과학으로 볼 때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는 정확하지 않으며 합리적인 소비를 돕지도 않는다. 화해가 탄생한 이후로 성분에 대한 사람들의 지식은 후퇴했다. 의미 없는 EWG 유해도 지수를 절대 진리처럼 섬기고 알레르기 주의성분과 20가지 주의성분을 피하느라 골치가 아플 뿐이다.
심지어 화장품회사들도 어떻게든 화해에서 좋은 점수를 내기 위해 성분을 짜 맞춘다. 그렇다고 더 안전한 화장품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미 안전했던 화장품이 다양성을 잃고 재미없고 천편일률적인 구성으로 바뀌고 있을 뿐이다.
화해는 왜곡된 정보, 불안을 부추기는 정보를 선택·편집하여 ‘가장 편리하고 합리적인 쇼핑 툴’인양 우리에게 주어졌다. 소비자들은 이것을 화장품 쇼핑의 답안지처럼 받아들였다. 덕분에 불과 5년 만에 엄청난 속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나는 5년 후, 10년 후의 ‘화해’가 걱정스럽다. 불안과 공포를 발판으로 성장한 세력은 계속 불안과 공포를 키우며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마케팅은 반드시 임계점이 온다. 지나친 공포 조성에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시점이 반드시 오는 것이다.
소비자가 EWG 유해도 지수가 아무 쓸모없는 정보라는 것을 깨닫고 20가지 주의성분이 무지와 편견으로 가득한 잘못된 정보를 깨닫게 될 때, 과연 화해에는 무엇이 남을까? 이들의 성장모델은 과연 ‘지속가능’(sustainable)할까?
▶ ‘성분표 읽어주는 여자’(https://blog.naver.com/the_critic/221365584964)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화장품비평가 최지현은...
일요신문 외신부, 뉴스위크 한국어판 번역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전문작가이자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우연히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를 읽고 브랜드와 가격에 휘둘리지 않고 성분만으로 화장품을 구입하자는 데 공감, 번역했다고 그는 말한다. 화장품회사의 터무니없는 광고나 근거 없는 미용 정보를 바로 잡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베스트셀러인 〈명품 피부를 망치는 42가지 진실〉의 공동 저자이다. 현재 블로그 ‘성분표 읽어주는 여자’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