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레알의 제품 중에 ‘리바이탈리프트 트리플 파워 콘센트레이티드 세럼 트리트먼트’(Revitalift Triple Power Concentrated Serum Treatment)라는 에센스가 있다. 아시아에서는 ‘리바이탈리프트 레이저 X3 세럼’(Revitalift Laser X3 Serum)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다. 두 제품은 용기 디자인도 다르고 성분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같은 제품으로 봐도 무방하다. EWG는 이 제품에 유해도 점수 7을 주었다. (ewg 제품 평가 링크 : http://www.ewg.org/skindeep/product/594327/L27Oreal_Paris_Revitalift_Triple_Power_Concentrated_Serum_Treatment/)
#1 20가지 주의성분 5개, 알레르기 주의성분 4개의 에센스
화해 어플 역시 결과가 좋지 않다. 20가지 주의성분 5개, 알레르기 주의성분 4개로 나온다. 이 정도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나쁜 제품이라는 판결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별을 하나만 줄 것이고, 누군가는 ‘탈락’을 외칠 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성분표를 보며 자세히 얘기해보자.
이 제품은 정제수에 몇 가지 유연성분, 보습성분, 세포영양성분, 점도증가제, 유화제, pH조절제, 몇 가지 지방산, 보존제, 색소, 향료로 구성돼 있다. 핵심이 되는 성분은 ①하이드록시프로필테트라하이드로피란트라이올, ②2-올레아미도-1,3-옥타데칸다이올, ③하이드롤라이즈드하이알루로닉애씨드, ④토코페릴아세테이트이다.
①번 성분은 자일로스에서 추출해낸 당단백질로 세포 내 뮤코다당류의 생성을 촉진하여 세포의 수분을 높여주는 성분이다. 로레알이 특허를 갖고 있으며 ‘프로-자일렌’이라는 상표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②번은 세라마이드 구성성분으로 각질층의 수분 보유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③번 역시 세포 안에 존재하는 성분으로 수분 보유력을 강화하고 강력한 항산화효과를 낸다. ④번은 비타민E 항산화 성분이다.
전반적으로 이 제품은 세포 내에 존재하는 당단백질, 세라마이드 지질, 지방산, 그리고 항산화성분을 배합한 안티에이징 세럼이다. 실리콘성분, 유연제, 유화제 등 질감과 흡수를 강화하는 성분들이 함께 배합되어 근사한 사용감을 만들어낸다. 로레알이 주장하는 것처럼 4주 만에 주름이 사라지고 처진 피부가 올라가는 효과는 없겠지만, 피부가 좀 더 탱탱해지고 매끄러워질 수는 있다. 구성으로 볼 때 항산화성분이 적은 것이 아쉽지만 안티에이징 세럼으로서 중간은 넘는 제품이다.
딱 한 가지 걸리는 성분은 8번째 적혀있는 변성알코올이다.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 넣은 것으로 양은 1~2% 정도로 추측된다. 알코올이 없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들어있다고 해서 큰일 날 성분은 아니다. 이 정도 농도에서는 그리 자극적이지 않으며 특히 보습성분과 함께 배합될 때는 자극이 상쇄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코올의 자극을 전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종합해볼 때, 이 제품은 최고라고 추천할만한 제품은 아니지만 기본은 되는 안티에이징 세럼이다. 그런데 EWG는 이 제품에 7점을 주었고, 화해어플은 20가지 주의성분이 5개, 알레르기 주의성분이 4개라고 말한다. 주요성분이 무엇이 들어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유해성분이 들어있는가, 몇 개가 들어있는가로 화장품을 판단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처럼 개별 성분의 유해성과 유해성분의 개수로 화장품을 판단하는 것이 과연 정당할까?
#2 진정한 화장품 판별법
화장품을 제대로 판단하려면 성분표에 적혀 있는 성분과 광고에 적혀 있는 주장을 대조하여 과연 그 주장에 합당한 성분이 들어있는가를 따져봐야 한다. 안티에이징이 된다고 주장한다면 안티에이징 성분이 들어있어야 하고, 항산화세럼이라고 이름을 붙였다면 항산화성분이 듬뿍 들어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주장과 성분 사이의 팩트체크를 하는 것이 진정한 화장품 판별법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성분분석은 온통 유해성분이 들어있나 안 들어있나, 들어있으면 몇 개가 들어있나, 보존제는 무얼 썼나로 판단한다. 천연향과 천연보존제는 합격, 인공향과 합성보존제는 탈락, 이런 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성분분석 문화는 참으로 부질없고 어리석다. 왜냐하면 설령 화장품 속에 유해성분이 들어있다 해도 화장품은 결코 유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파라벤이 유해한 경우는 오직 고농도로 장기간 먹거나 흡입하거나 피부에 바를 때뿐이다. PEG가 유해한 경우는 오직 엄청 많은 양을 섭취할 경우뿐이다. 우리는 화장품을 먹거나 흡입하지 않는다.
파라벤은 많이 들어가 봤자 0.8%이며 이 정도 수준에서는 피부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PEG는 원래 피부자극이 낮은 물질이며 오히려 화장품 속에 함유되어 보습과 점도조절, 흡수율 강화 등의 이로운 역할을 한다.
화장품에 쓰이는 모든 성분은 대체적으로 유해성이 낮으며, 설사 유해성이 높다 해도 아주 낮은 농도로 제한된다. 유해한 성분과 무해한 성분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물질은 고농도에서 함부로 쓰면 유해할 수 있고 저농도에서 용도에 맞게 사용하면 무해하다.
화장품은 식약처의 감독 하에 위험관리를 철저히 하는 상품이다. 세상의 어떤 나라도 유해한 성분을 화장품에 유해한 수준으로 넣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또한 어떠한 화장품화학자도 자기가 만드는 화장품에 유해한 성분을 마구 집어넣지 않는다.
위의 로레알 제품 속의 유해성분을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항료는 EWG 유해도점수 8점이다. 하지만 향료는 불과 0.1~0.5% 수준으로 들어간다. 이 정도 농도에서는 건강한 피부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직 향 과민성, 향료 알레르기를 갖고 있는 사람만 조심하면 된다.
유해도 5~6으로 분류된 알레르기 주의성분도 마찬가지다. 이 성분이 들어있다고 없던 알레르기가 유발되지 않는다. 알레르기가 발생한다면 그것은 몸 안에 그 성분에 대한 감작(sensitization)이 이미 만들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식약처가 이 리스트를 발표한 이유는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미리 성분표를 보고 참고하라는 의도이지 결코 모든 사람이 이 성분을 피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더구나 이 알레르기 주의성분들은 따로 집어넣은 것이 아니라 향료 안에 포함돼있는 물질이다. 보통 향료가 0.5% 수준으로 첨가되므로 이 성분들의 함량은 많아야 0.1% 이하, 거의 ppm 수준으로 적다. 이렇게 적은 양으로 피부가 뒤집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3 20가지 주의성분과 EWG의 비과학성
‘20가지 주의성분’은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 과학데이터를 엉뚱하게 해석해서 만든 엉터리 정보다. 이들이 주의성분으로 꼽은 향, 색소, 페녹시에탄올, PEG 등은 모두 화장품 속에서 안전한 농도로 사용된다. 20가지 주의성분은 식약처나 FDA 같은 감독기관이 발표한 것이 아니다. 권위 있는 학술지가 발표한 것도 아니고, 신뢰할만한 과학자가 발표한 것도 아니다.
두 명의 개인, 그것도 과학데이터를 제대로 해석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리스트다. 이런 리스트에 휘둘릴수록 우리는 과학과 멀어지고 편견에 사로잡히게 된다.
EWG 유해도 점수도 마찬가지다. EWG는 권위 있는 환경단체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다고 과학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독성정보, 발암물질정보, 위험물질정보 등을 끌어와서 화장품 성분에 고스란히 대입한다. 변성알코올에 생식독성이 있다는 둥, 페녹시에탄올이 위험물질로 분류돼있다는 둥, PEG가 불임을 일으킨다는 둥의 독성정보를 바탕으로 빨간 딱지, 노란 딱지를 붙인다.
EWG 유해도점수가 탄생한 이후로 소비자들에겐 나아진 것이 없다. 오히려 더 불안해졌고, 선택이 더 힘들어졌다. 나아진 것은 천연화장품 산업이 쑥쑥 성장하고 EWG의 후원계좌에 돈이 굴러들어온다는 것뿐이다.
결론은, 로레알의 이 제품은 엄청 좋은 제품도 아니지만 유해도 점수 7점을 받을 정도로 극악무도한 제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유해도 점수 7이라면, 알레르기가 유발되고, 피부자극이 생기고, 호르몬 교란에 암까지 유발되는 그런 나쁜 제품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세상에 이렇게 나쁜 화장품은 없다. 이런 화장품은 만들어지지도 않으며 만들 수도 없다. 화장품은 피부를 적당히 촉촉하게 해주면서 보기 좋은 윤기를 주어 피부를 보호해주는 물건이다. 어떤 화장품이든 이런 기본적인 역할을 해준다.
실제로 이 세럼의 사용자들은 이 제품이 피부를 더 탱탱하고 매끄럽게 만들어줬다고 말한다. 로레알의 미국 홈페이지에는 2017년 7월 현재 무려 971건의 사용후기가 올라와있고 사용 만족도는 5점 만점에 4.4이다. 아주 드물게 이 제품을 바르고 여드름이 났다는 후기도 있지만, 이런 후기가 올라오는 건 어느 제품이나 마찬가지다.
성분표에서 우리가 봐야할 것은 광고의 내용에 부합하는 유익한 성분이 얼마나 잘 구성되었는가이지 유해성분이 몇 개이고 유해도 점수가 얼마인지가 아니다. 화장품의 품질을 ‘성분의 유해성’으로 따진다는 것 자체가 핵심에서 벗어났다.
화장품은 유해하지 않다. 이미 안전하다. 왜 안전한 제품을 앞에 놓고 유해성을 따지고 있을까? 누가 이런 헛소동으로 우리를 끌어들였을까? 있지도 않은 유해성분 찾기 게임에서 하루 빨리 각성하고 빠져나와야 한다.
▶ ‘성분표 읽어주는 여자’(https://blog.naver.com/the_critic/221051805815)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화장품비평가 최지현은...
일요신문 외신부, 뉴스위크 한국어판 번역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전문작가이자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우연히 폴라 비가운의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를 읽고 브랜드와 가격에 휘둘리지 않고 성분만으로 화장품을 구입하자는 데 공감, 번역했다고 그는 말한다. 화장품회사의 터무니없는 광고나 근거 없는 미용 정보를 바로 잡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임을 밝혔다. 베스트셀러인 〈명품 피부를 망치는 42가지 진실〉의 공동 저자이다. 현재 블로그 ‘성분표 읽어주는 여자’를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