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하는 사업이 바로 프랑스의 유명 브랜드 또는 제품들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권에 수출할 수 있도록 연결해 주거나, 브랜드 라이센싱 계약이 체결될 수 있도록 회사와 회사를 연결해주는 것뿐만 아니라, 계약이 성사되어 수 년이 지나 종료될 때까지 불어가 능통하지 않는 아시아권 회사들을 위하여 중간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창구역할도 하며 업무를 도와주는 일이었다. 더운 날씨는 상관없다는 듯이 베이지색 여름정장에 투명하게 비치는 넓은 스카프를 목부터 어깨까지 흘러내리게 조화시킨 파리에서 금방 넘어온 이 멋진 파리지엔느는 마치 내가 파리의 한 복판에 서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당연하다는 듯이 불어가 튀어나올 듯 하였지만, 그녀는 매우 자연스럽고 유창한 한국말로 인사말을 하였다. “안녕하세요? 파리에 있는 쟝의 소개로 얘기를 듣고 왔습니다. 마침 한국에 올 일이 있었지만, 다른 일정 상 방문하긴 힘들었는데, 쟝의 간곡한 부탁도 있어서 일정 하나를 빼고 급히 오느라 미처 연락도 못 드리고 무작정 오게 되었네요. 죄송합니다.” 그녀의 자신감 있는 모습에 어울리는 맑고 또렷한 목소리는 지쳐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한 순간 생
송팀장을 포함한 사업개발팀 멤버들은 조사를 직접 진행한 D사의 엄대리와 장시간 회의를 통하여, 최종적으로 M&C를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 화장품이라는 막연한 이미지와 선입관은 코어 타겟이 올드하다고 생각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제품개발 시 젊은 느낌의 디자인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구축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M&C가 다른 두 개의 브랜드보다 인지도를 포함한 다른 항목에서는 월등한 지표를 나타냈기 때문에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송팀장은 바로 M&C에 대해서 경영진에 보고를 하였으며, 이에 대해서 다른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소비자 조사 결과도 좋았지만, 현재 국내에 형성된 성공적인 패션 이미지에 대해 대부분이 만족스러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과연 어떻게 이 브랜드를 라이센싱해 올 수 있느냐는 것이다. 송팀장은 수소문을 통하여 프랑스 파리에 있는 M&C 본사의 해외 라이센스 담당자를 찾아, 브랜드 라이센싱에 대한 관심을 표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나 몇 주가 되어서야 온 대답은 한마디로 “No”였
다음 날 한 시간 단위로 두 곳의 리서치 회사의 담당자들이 사업개발팀을 방문하자, 신대리는 마치 그가 직접 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번 리서치의 취지를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상으로 이번 리서치의 주요 배경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다시 요약하면 이번 리서치는 화장품과 어울리는 외국 유명 브랜드를 선택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선별한 세 브랜드는 이미 국내 젊은 여성들에게 꽤 알려진 브랜드들이지만, 정확히 어느 정도 수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번 조사를 통해서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신대리는 PPT의 최종 슬라이드로 화면을 옮겼다. 화면에 이번 조사의 궁극적인 목적이 굵은 글씨체로 크게 강조되어 나타나자, 그는 힘찬 목소리로 더욱 강조하며 화면의 글을 또박또박 읽어 나갔다. “1. 각각의 브랜드에 대해 소비자는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2. 브랜드 인지도는 각각 어느 정도인가?3. 브랜드별 정확한 코어 타겟은 누구인가?4. 화장품 브랜드로서의 적합성은 어떠한가?5. 결론적으로 최종 어떤 브랜드를 선택하는 것이 좋은가?” 리서치의 취지와 목적에 대한 설명이 끝나자 그는 매우 다급하다는 듯이 말하였다. “저희가 급한 관계로 빨
“하하~ 메모할 것 까진 없는데…., 일단 마케팅 리서치는 크게 정량조사(Quantitative Study)와 정성조사(Qualitative Study)로 나눌 수 있어. 정량(Quantitative)조사란 말 그대로 양적인 계산을 통해 정하는 조사 방법이야. 우리가 흔히들 접하는 인구센서스 조사나, TV 시청률 조사, 선거할 때 하는 전화 조사 및 출구조사 등이 모두 정량조사에 속해. 그리고 이제 우리가 하려고 하는 브랜드 인지도나 이미지 조사 같은 것도 대표적인 정량조사이지. 우리회사 마케팅부에서도 브랜드에 대한 A&U, 즉 Attitude & Usage(브랜드에 대한 태도와 사용현황)를 파악하기 위해 정량조사를 많이 하고 있어. 그러니 정량조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어?” “네? 글쎄요…. 조사의 신뢰성 아닐까요?” 조윤희가 잠시 생각하다 갑자기 큰 소리로 대답하는 모습이 마치 천진난만한 초등학생이 갑자기 학구열에 불타 올라 ‘저요’하며 일어나서 손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렇지. 뉴스에서도 가끔 어떤 조사결과가 발표되면 신뢰구간이 95%라는 등의 말이 나오는 것 들어봤을 거야. 아무래도 전 인구를 다 조사하는 것이 아니라 표본
사업개발팀의 일은 한 마디로 좋은 브랜드를 찾아내서 화장품으로 개발이 가능한지 사업성을 평가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일이다. 아무래도 외국물 먹은 송팀장과 조윤희가 프랑스 대사관 및 상공회의소, 그리고 인적 네트워크를 이용해서 적절한 브랜드를 찾으면 신대리는 한국 시장에서 이 브랜드들이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일을 하였다. 사실 신대리가 점쟁이도 아닌데, 브랜드가 미래에 성공할 수 있는가를 어찌 알 수가 있겠는가 만은, 최소한 시장을 바라보는 그만의 통찰력과 영업팀장 및 대리점 사장들의 다양한 의견이 더해지면서, 그는 최소한 이번 프로젝트에서 적절한 브랜드 선택의 중요한 기준 하나는 정할 수가 있었다. 즉, 외국에서 화장품 브랜드로 출시되어 있지 않아야 하고, 국내에서 중간 이상 정도로 브랜드 인지도가 높으며, 화장품과 어울릴 수 있는 세련되고 감각적이어야 한다는 기준으로, 신대리는 여러 브랜드를 걸러낼 수 있었다. 탈락한 브랜드들은 주로 프랑스에서는 유명하지만 국내 인지도가 약한 브랜드들이 많았는데, 이런 브랜드들은 국내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막대한 광고투자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비싼 로열티를 주고 가져올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
인사 및 조직 개편은 생각보다 빨리 진행되었다. 기대한 만큼 파격적인 조치는 아니었지만, 마케팅 김상무가 다른 사업부로 떠나게 된 것이 큰 사건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팀장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남아 있을 수 있었으며, 최상무도 스스로 회사를 떠나지 않고 계속 남아있기로 하였는데, 마케팅부는 새로운 마케팅 임원이 올 때까지 최상무가 당분간 겸임하게 되어, 그 동안 최상무에게 사사건건 반대해왔던 이팀장의 입장이 더욱 난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신대리와 박성준은 새로 신설된 사업개발팀에서 그들이 제안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다행인 것은 껄끄러운 이팀장 밑에서 계속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장조사 업무는 앞으로 마케팅부에서 하지 않고 영업지원팀에서 하게 되었기 때문에, 신대리는 영업지원팀의 새 담당자에게 업무 인수인계를 하느라 사업개발팀에 일주일 늦게 합류하게 되었다. 신대리가 사업개발팀으로 짐을 옮겼을 때는 이미 골방 같았던 작은 공간도 어엿한 사무실로 그럴싸하게 바뀌어 있었다. “안녕하세요? 드디어 제가 왔습니다.” 신대리는 밝은 표정으로 박성준과 사업개발팀 조윤희에게 인사를 하였다. “어머! 어서 오세요. 미리 말씀
“사장님, 국내 시판시장은 지금 한 마디로 아수라장입니다. 과도한 할인과 판촉 경쟁은 이미 브랜드 생명을 갉아 먹다 못해 회사의 이미지까지 삼키고 있습니다. 그 예로 우리회사 제품들은 이미 전문점에서 40% 이상 할인을 하지 않으면 구입하지 않는 제품들로 가득합니다. 우리회사는 더욱이 단기적 매출 증대에 급급하여 직영 영업소를 통한 매출 밀어내기를 자행하였고, 이는 우리회사 브랜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신대리, 질문과는 거리가 먼 얘기인 것 같은데….” 김상무가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는 직영영업소 문제가 워낙 첨예한 일이라 여기서 거론되기를 원하지 않았다. “아닙니다, 상무님. 이건 매우 중요한 연결선상에 있습니다. 이곳에는 자금을 맡고 계시는 유이사님도 계십니다. 아까 우리회사의 자금 여력에 대해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회사가 방문판매부터 시작하여 30년간 상당한 자금을 축적한 것으로 다들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 갑자기 자금력에 문제가 생긴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직영영업소의 증대입니다. 사무실 임대료 및 인건비는 무시 못할 자금 투입입니다.” 신대리가 유이사를 힐끔 바라보자 유이사는 긍정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줬다
자리로 돌아오자 마자 이팀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신대리는 이팀장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대도 이젠 더 이상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미 회사를 떠날 각오로 저지른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팀장의 한바탕 소란 중에 이번에는 김상무 방으로 불려갔다. 신대리는 똑 같은 소리를 다시 한번 들어야 했다. 그들은 위아래도 못 알아 보는 조직의 암적인 존재로 그를 몰아 부쳤다. 점심식사 시간 내내 식사도 하지 못한 채 그들이 퍼붓는 욕을 신대리는 받아 넘겨야만 했다. 그러던 한 순간 김상무도 이제 지쳤는지, 잠시 말을 끊었고 일순 침묵이 방안에 가득 잠겼다. 신대리가 어색한 정막을 깨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는 더 이상 전 직장에서처럼 도망치듯 회사를 떠났던 겁장이가 아니었다. “팀장님, 상무님. 저는 오늘과 같은 보고를 1년 동안 매월 올렸습니다. 그런데 제가 올린 보고는 위로 올라가면서 누락되고 왜곡되어 왔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알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진정 회사를 위한 것인지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 같은 암적인 존재를 수술해서 도려내시겠다면 마음대로 하십시오. 이미 저는 각오하고 한 일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두 분께 진정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손자병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