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창집에 도착해서 자리를 두리번 거렸지만 강소장은 아직 오지 않았다. 신대리는 주인 아줌마에게 반가운 인사를 던지며, 구석진 자리를 골라 앉아, 평소 둘이 잘 먹던 곱창 구이 2인분을 주문하였다. 몇 분 안되어 강소장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신대리는 손을 흔들어 반가움을 표시하였다. “바쁘신 양반이 웬일이야?” “그만 놀려라. 누군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지 아냐? 나도 많이 힘들다.” “그래 어쨌든 반갑다. 나는 야근하기 전에 이미 저녁 먹었는데, 저녁은 먹고 다니냐?” “저녁 먹을 시간도 없다. 오늘도 원래 있던 약속이 깨져서, 겸사겸사 너 보려고 왔다.” “그렇지 임마, 네가 웬일인가 했다. 결국 난 대타구나? 그래도 어쨌든 반갑고, 오랜만인데 일단 건배나 한잔 하자.” 그렇게 몇 잔의 술이 돌자, 강소장 얼굴은 금방 빨갛게 물들었다. 원래 강철의 사나이라 불릴 정도였는데, 곱창이 익기도 전에 빈 속에 소주부터 들이켜서인지 아니면 그 동안 많이 약해져서인지, 예전의 강소장 같지가 않았다. “야~ 뭐가 그리 힘드니?” 강소장의 낌새가 여느 때와 다르다고 느꼈는지, 먼저 신대리가 말을 꺼냈다. “네가 매월 보내주는 보고서 잘 보고 있다. 영업하는데 많이 도움
그 해 4월 최초로 개설된 중부영업소의 담당구역은 화장품1번지라 하는 명동을 포함한 중구지역으로써, 화장품시장을 주도하는 치열한 전장과도 같은 핵심상권인 곳이다. 회사는 이런 중요 상권에서 특히 열세를 면치 못해왔기 때문에, 영업부에서 가장 능력 있는 강대리가 영업소장의 중임을 맡게 되었다. 강대리는 신대리와 같은 대학 경역학과 동창이었으며, 신대리가 영업지원부 시절에 회사의 문제점에 대해 항상 함께 고민했던 절친한 사이였다. 그리고 신대리가 마케팅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도 그는 언제라도 소주 한잔을 기울이며 회사와 자신의 미래를 고민할 수 있는 좋은 친구였다. 그러나 대학시절에 둘은 그리 친하지 않았다. 신대리는 학과 활동 보다는 동아리 활동에 많은 시간을 보낸 반면, 과 대표였던 강대리는 학과 활동에 전념했기 때문이다. 강대리는 졸업 후 바로 회사에 입사했지만, 신대리는 대학원을 준비하다가 6개월 늦게 다른 회사에 갔다가 이곳으로 입사하게 되어, 뒤늦게 회사에서 만나 친하게 된 경우였다. 강소장은 확실히 기대에 부응하였다. 특히 가격이 난립되어 있는 명동지역의 대형상권을 확실히 침투한 결과 첫 달에 매출 6천만원을 달성하였다. 그 결과 그는 과장으로 특진되
2006년 10월, 신대리는 마케팅부에서 두 번째 가을을 맞이했다. 벌써 마케팅부에 온지 만 1년이 지났지만, 뭔가 하나라도 변한 게 없었다. 그 동안 신대리는 매월 점점 더 두꺼워지는 충실한 시장조사 보고서를 올렸지만, 언제부터인가 회사는 그냥 익숙하게 읽는 월간지 마냥 그의 보고서를 흘려 넘기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도 처음 3개월은 뭔가 변화의 조짐이 보였지만, 성수기인 봄에 신제품 출시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이것 저것 따질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신대리의 의견, 즉 시장의 의견은 차츰 무시되기 시작했다. 결국 시장 보고서에 대한 처음의 놀라움과 시장환경 분석의 중요성은 신 브랜드인 아미앙떼가 나오면서 잊혀져 갔으며, 모든 사람들이 아미앙떼의 성공을 위하여 전력투구를 해야 한다는 명목 하에, 또 다시 주변은 보지도 않고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들이 되어, 시장과 고객을 무시한 채 회사의 주장을 고객들에게 강요하는 행동들을 저지르고 있었다. 아미앙떼는 모든 이들의 기대와는 달리 좋은 실적을 만들지 못하였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고, 고객의 입장에서 조금만 들여다 보면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일이었다. 신대리는 경쟁사와 시장 트렌드에 대해
“안녕하십니까? 신대리입니다. 오늘 제가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사실 여러 분들이 이미 다 아시는 내용을 단지 보기 쉽게 정리한 것으로써, 우리회사가 시장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그리고 우리의 주요 고객은 우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 지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럼 먼저 안테나 매장을 통해 입수한 고객의 소리부터 들어 보시겠습니다.” 슬라이드를 한 장 한 장 넘겨 갈수록 그는 점점 더 자신감이 생기고 목소리에 힘이 붙었다. 어느덧 안테나 매장에 대한 보고가 끝나고, 경쟁사 동향에 대한 설명으로 화면이 바뀌었을 때, 그의 심장의 두근거림은 여전했지만 더 이상 떨림은 없었으며, 그의 발표는 그 동안 안타까워 했던 회사의 문제점들을 확실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가득찼다. “결국 우리회사의 문제점은 초저가 가격으로 시장을 공략을 하고 있는 브랜드숍인 M사, M사를 벤치마크하였지만 자연주의를 표방하며 이미지를 굳혀나가는 F사의 놀라운 시장확대, 제주도의 청정 컨셉으로 이 시장에 뛰어든 A사 등에 비해 강력하고 뚜렷한 하나의 제품 컨셉이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화장품전문점 시장에서도 시장의 리더인 A사와 비슷한
신대리는 안테나 매장 설문조사 결과와 함께 경쟁사 동향을 함께 정리하는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이로서 회사는 고객의 의견과 경쟁사 현황을 정기적으로 보고 받을 수 있는 체계적인 마켓 인텔리전스 시스템(Market Intelligence System)을 부족하나마 가지게 되어, 시장에 발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12월 정책으로 실시하는 장려금, 할증, 판촉물, 신제품 출시 계획과 12월의 매출계획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회사가 경쟁사 대비 어떤 위치에 있는지 쉽게 알아 볼 수 있도록 도표화도 하였다. 그의 보고서를 보면 회사는 확실히 장려금이나 판촉물 지원이 경쟁사에 비해 별 차이가 없었지만, 전문점의 마진과 직결되는 할증정책은 후발업체보다 부족했고, 신제품 수나 제품의 차별점은 선두업체보다 부족한 것이 무엇 하나 뚜렷하게 잘하는 게 없는 것으로 보였다. 결국 그는 지금의 지독한 경쟁환경에서 회사가 생존할 수 있는 확실한 차별점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브랜드숍을 운영하는 회사들의 엄청난 가격 경쟁력과 톡톡 튀는 제품들을 보면, 언젠가는 이 화장품시장이 모두 브랜드숍으로 변할 것만 같은 두려움도 앞섰다. 이런 신대리의 보고서
레스토랑은 요즘 새로 생기는 밝고 화사한 분위기와는 정반대로 신대리가 대학 시절에 많이 다녔던 곳과 비슷하게 전체적으로 어둡고, 칸막이와 방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예전에 이런 곳은 주로 여학생들이 몰래 담배 피우려고 많이 모였지만, 요즘은 여자들도 숨어 피우지 않기 때문에 점차 없어지는 추세였다. 신대리는 하얀 눈 세상에서 갑자기 어두운 나라로 떨어져 들어온 것처럼, 한 순간 장소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디로 찾아가야할 지 모른 채 무작정 길이 나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때 마침 신과장이 엉뚱한 곳으로 지나가는 신대리를 보고 부르자, 소리 나는 방향으로 급히 몸을 돌려 점차 익숙해지는 어둠 속에서 자리를 찾아 갈 수가 있었다. 좀 더 구석지고 밀폐된 방에는 다섯 명의 사람들이 이미 모여 있었다. 신대리는 다행히 자신보다 늦은 사람이 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눈 때문에 사람들이 다소 늦어지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신대리입니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신대리의 인사에 모두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낯 설은 사람들 틈 속에서 지난 주에 만났던 입사동기였으나 1년 전 다른 회사에서 둥지를 새로 튼 송대리가 더욱 반가와 보였다. 각자의 통성명이 끝나자 신대
신대리가 마케팅 정책 및 신제품에 대한 모니터링을 위해 계획한 안테나 매장 운영계획은 매우 좋은 평을 받고 채택 되었다. 안테나 매장 운영은 다음과 같은 일석이조 (一石二鳥)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었다. 첫째, 전국 주요 매장으로부터 자사 및 경쟁사의 정책 현황을 고객의 입장에서 보다 체계적으로 현상 파악할 수 있으며, 새로 출시된 신제품에 대한 파일럿 테스트(Pilot Test)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 물론 신제품에 대해서는 그간에도 출시 전후 다방면의 조사가 있었지만, 주요 매장에서 제품을 직접 판매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반영된 적은 별로 없었다. 이렇게 판매자가 직접 제품 개발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신제품에 대한 충성도(Loyalty)를 높일 수 있어, 향후 경쟁사 제품 보다 더 관심을 기울여 판매를 증대시킬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둘째, 설문조사 보답으로 지급하는 미니샘플(Mini Sample)은 그 자체가 주요 우수 매장에 대한 고객관리가 되는 한편, 샘플을 통한 제품 홍보 및 판촉 효과가 있어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될 수가 있다. 물론 샘플 지급 비용이 적지 않게 들겠지만, 비용 대비 거둘 수 있는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 모두의 공통된 생각
며칠 후, 신대리는 신과장으로부터 먼저 전화를 받았다. 그렇잖아도 문선배에게 받은 신과장 전화번호를 책상 앞에 붙여놓고 매일 전화해야 하는데 하는 마음만 있었지, 그 동안 안테나 매장의 선정 및 운영 방안에 대한 계획서를 작성하느라 미처 연락을 취하지 못하고 있었던 참이라, 그의 전화가 여간 반가운 게 아니었다. 신대리는 오늘이라도 당장 만나고 싶은 마음에, 만사를 제쳐 놓고 오후에 약속 장소인 명동의 대형 화장품전문점 앞으로 나갔다. 신과장은 약 170cm 밑으로 보이는 작은 키에 검은 색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으며, 초겨울 날씨에 벌써 추위를 느끼는지 긴 회색 코트를 입고 있는 모습이, 마치 이불을 덮고 있는 것만 같아 가뜩이나 작은 그의 키를 더욱 작아 보이게 했다. 신과장은 전화로 설명들은 인상착의만으로도 충분히 알아 볼 수 있을 정도로 개성 있는 모습이었다. 신대리는 아무 내색 않고 환한 웃음과 함께 손을 내밀어 인사를 했다. 둘은 악수로 서로의 따스한 온기를 나누고는, 바로 가까운 커피샵으로 자리를 옮겼다. 자리에 앉자 약간의 인사 말과 소개가 이어졌다. 신과장은 신대리와 한글로는 같은 신씨였지만 평산이 본인 신(申)대리와는 달리, 흔치 않은 거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