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브랜드 등장으로 로컬과 일본 화장품을 등진 한국의 1990년대 상황을 명심해야 한다. K-뷰티가 중국에 배척당할 수 있다.” 당시 한국 화장품 시장의 소비자 흐름을 되짚은 트렌드랩506 이정민 대표. 위기의 K-뷰티를 겨냥한 그의 일침에 청중은 인정할수 밖에 없었다.
"1990년 화장품 시장을 기억하는가?" 이정민 대표의 경고가 시작됐다. 에스티로더, 크리니크 등 글로벌 브랜드가 1990년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소비자는 두 가지를 버렸다. 1980년대를 주름잡던 쥬단학, 피어리스, 태평양, 코리아나 등 기존 로컬 브랜드를 외면했고, 가네보, 폴라 등 일본 브랜드를 따돌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는 “중국도 1990년대 한국 화장품 시장과 상황이 비슷하다. 현재 중국에서의 K-뷰티 입지가 한국에서 일본 화장품이 처했던 과거와 매우 유사하다”고 우려했다.
지금의 중국 소비자는 1세대 로컬 화장품 브랜드에서 2세대로 취향이 바뀌는 추세다. 또 중국인이 한국 브랜드를 버리고 글로벌 브랜드로 갈아타려는 시점이 바로 ‘지금’이라는 게 이정민 대표의 해석이다.
지난 11월 2일 트렌드랩506과 메저차이나가 공동 주최한 ‘2018 차이나 뷰티 마켓 트렌드’ 세미나의 주제는 ‘K–뷰티만 모르는 넥스트 차이나’였다. 이날 이정민 대표는 “우리와 성향이 틀린 중국 그리고 중국인을 정확히 살펴야 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한 현지에서의 마케팅과 브랜딩 활용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세미나에서 발표한 이정민 대표의 모든 자료는 메저차이나(MEASURE CHINA)의 빅데이터에 근거했다. 메저차이나는 올해 4월부터 9월까지 타오바오와 티몰에서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상위 3만 4000개 브랜드, 320만 개 상품, 소비자 리뷰를 분석했다.
#1. 중국을 모르는 ‘스킨+로션’ 세트
중국 티몰과 타오바오에서 올해 2~3분기에 가장 인기가 높았던 스킨케어 ‘세트’는 LG생활건강의 ‘후’다. 6개월간 매출액 2억3906만위안을 기록하며 1위에 올랐다. 9위인 이니스프리는 ‘세트’로 1억1740만위안을 판매했다.
1위는 '후'였다. 그렇다면 ‘세트’ 부문 TOP 10에서 K-뷰티 vs J-뷰티 vs C-뷰티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일까?
J-뷰티는 사실상 순위에 없었다. 다만 ‘SK-Ⅱ’를 일본 제품이라고 ‘굳게 믿는’ 중국인들의 성향을 반영한 이정민 대표는 ‘SK-Ⅱ’를 J-뷰티로 분류했다. 같은 기간 SK-Ⅱ의 ‘세트’ 판매액은 2억3555만위안으로 TOP 2다.
결국 TOP 10의 7개 순위를 휩쓴 C-뷰티가 승리한 셈이다. 7개 브랜드의 매출은 압도적이다. pechoin(3위), proya(4위), HKH(5위), Mageline(6위), CHANDO(7위), OSM(8위), KANS(9위)의 합산 매출액은 11억4000만위안이다. K-뷰티(3억5646위안)의 3.1배, J-뷰티의 5.2배에 달한다.
이정민 대표는 “중국 로컬 브랜드의 스킨케어 ‘세트’가 중국인에게 통하는 이유는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세트 구성에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들은 스킨과 로션의 조합을 불편해한다는 게 이정민 대표의 목격담이다.
우리나라의 스킨케어 세트는 ‘스킨+로션’이나 ‘스킨+로션+크림(견본)’이 대부분이다. 중국에서 판매되는 ‘후’나 ‘설화수’ 등의 세트 구성도 비슷하다. 반면 중국인들은 스킨과 로션 대신 에센스 하나만 바르는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중국 세트 구성은 ‘스킨+에센스’, ‘스킨+크림’이 주를 이룬다.
#2. 눈 화장 중요한 중국 시장에 K-뷰티만 ‘취약’
중국의 아이 메이크업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K-뷰티의 신속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정민 대표는 “중국인들의 재미있는 습성 중 하나가 눈 화장을 꼭 하고 외출한다는 것”이라며 “중국인의 아이 메이크업 순서는 마스카라 → 아이섀도우 → 아이라이너”라고 설명했다. 한국 트렌드와는 다르다는 평가다.
중국에서 한때 유행했던 눈썹 문신은 저물고 있다. 대신 ‘바이두’에서 눈썹이나 아이라인 잘 그리는 법 등을 검색하는 젊은 층이 늘면서 아이 메이크업이 ‘핫’한 제품으로 등장했다. 눈 화장에 열정적인 중국인들이 색조에 입문하면서 가장 많이 구입하는 제품으로 아이섀도우 라인의 ‘팔렛트’가 꼽힌다.
중국 티몰과 타오바오의 2~3분기 아이섀도우 매출을 살펴보면 TOP 5 중 PERFECT DIARY(2위), CHIOTURE(3위), Judydoll(4위) 등 중국 브랜드다. 게다가 1위인 VENUS MABBLE도 홍콩 브랜드다. 5위는 톰포드(미국)였다.
TOP 5의 합산매출액은 1억7133만위안. 이중 중국 브랜드가 1억4359만위안(홍콩 포함 4개)으로 아이섀도우 상위권을 중국 로컬브랜드가 휩쓸고 있다. TOP 10에는 한국 브랜드는 전무한 상태다.
#3. 중국인은 진심으로 ‘빨강’에 미쳐있다
‘돼지 간색 립스틱’, ‘생리혈 립스틱’ 등의 명칭은 한국인의 상식선에서 난해한 ‘작명 센스’이나 중국인들은 열광한다. 또 ‘톰포드’의 빨강, ‘디올’의 빨강 등 ‘빨간색’의 대명사처럼 부르며 친구와 "넌 어떤 브랜드의 '빨강'을 써?"라며 대화하고 정보를 나누는 게 일상행활이다. 반면 중국인에게 한국 브랜드의 '빨간색은' 존재감이 미비한 것으로 조사돼 충격이다.
세미나에서 이정민 대표는 ”우리나라는 중국의 베이스메이크업 시장을 가져갔지만 ‘빨강’의 시장에서는 절대적으로 밀리고 있다“고 확신했다. 빨강에 열광하는 중국에서 ‘립’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적 마케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중국 립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의 고전은 패키지가 너무 겸손하기 떄문”이라면서 “중국인은 밖에서도 수시로 화장을 고친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색조 브랜드와 패키징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다”라고 이정민 대표는 조언했다.
실제 티몰·타오바오 2~3분기 립스틱 부문의 TOP 10은 패키징과 ‘빨강’에 대한 네이밍에 강한 디올, 입생로랑, 지방시, 샤넬, 에스티로더 등 글로벌 브랜드로 모두 채워졌다. K-뷰티가 끼어들 조그만 틈바구니조차 없다.
1위인 맥은 4월부터 6개월간 2억5146위안(410.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특히 남자 모델을 활용해 빨간색을 홍보한 아르마니는 같은 기간 립스틱 76만 개를 판매했다. 중국인이 립스틱 모델로 남자를 선호하는 경향은 “이 립스틱을 바르면 모델과 키스하는 것”이라는 마케팅이 통해서다.
이정민 대표는 K-뷰티를 바라보는 중국인의 시선이 불안하다. 그는 “K-뷰티가 아닌 J-뷰티를 ‘혁신적’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한국 화장품은 ‘보수적’이라고 표현했다”면서 “K-뷰티는 ‘가짜’를 살 수 있지만, ‘안전’하고 ‘정직’한 J-뷰티는 모두 ‘정품’이라고 중국인은 확신한다”고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어 “중국이 한국을 버리고 글로벌 브랜드로 갈아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고 이정민 대표는 거듭 경고한다. 중국에서 K-뷰티의 ‘팽’을 막으려는 묘수는 ‘관찰’에 있다. 우리의 습관이나 관행대로 중국을 마주해서는 안 된다. 중국 소비자 트렌드와 패턴의 분석을 통해 다음 대책인 ‘넥스트 K-뷰티’ 구축으로 이어져야 할 전망이다.
CNCNEWS=차성준 기자 csj@cn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