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모두에게 역동적(dynamic)인 한 해였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누구 하나 영향을 받지 않은 분은 없겠지요. 그럼에도 기회를 잘 살린 사람도 있게 마련이어서, 그 경우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을 겁니다.
특히 의료기기나 방호용품 업체는 역대 처음으로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며 전 세계에서 러브콜을 받았고, 바뀐 상황에서 을이 아닌 갑의 입장에서 거래를 주도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까다로운 인증 없이도 빠른 시간 내 시장 진입이 가능했던 정말 수십 년래 오기 힘든 기회였습니다.
실제 ALC21도 다양한 기회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회사 정체성(Identity)을 바꿀 만큼 큰 기회도 왔지만 단 한 가지를 잘못해서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바로 ‘제대로 된 검증’입니다.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자 캐나다 정부는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규제를 일시 해제하면서 ALC21은 연방 정부의 밴더로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정부 조달 건은 대형 업체 밴더 등록보다 훨씬 어려운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다행히 좋은 인맥의 도움을 받아서 연결이 될 수 있었습니다. 북미에선 “좋은 인맥은 검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캐나다 정부를 대변하는 바이어 자격으로 한국, 중국, 아시아 제조사를 찾기 시작했고 가능하면 인맥을 통해 한국 업체를 접촉했습니다. 즉, 제품을 갖추고 시작한 게 아니라 실제 수출 구조를 갖춘 후 제품을 찾은 것입니다. 이는 한국의 수입자라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수출을 꿈꾸는 업체라면 우선적으로 수출 자격을 갖춰야 하며, 그 다음이 제품이 되어야만 합니다.
한국 제조사와 거래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평소라면 바로 대응이 왔겠지만 코로나19 특수 상황에서 그들의 자만심은 하늘을 찌를 듯했습니다. 가격은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샘플도 직접 공수하고, 선입금 없이는 대꾸 않는 오만함이 불편했습니다. 장기적으로 이 기회를 살려 캐나다 정부 납품 구조를 만들라는 조언도 팽개치고, 대부분 지금 찾아온 기회에서 모든 것을 뽑아내려는 듯 행동했습니다.
어쨌든 18개 컨테이너 분량을 개런티 한 상태에서 우선 20% 선오더를 넣었고, 밴더 자격으로 모든 책임을 안고 진행했습니다. 제품을 받기도 전에 선입금 해주고, 배를 먼저 띄운 후 기본 라이센스 부분도 급박하게 처리했습니다. 제품 도착 시점에서 물건 확인 전에 잔금 처리를 해주는 등 편의를 봐주면서 2차 진행을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납품 제품 중에 하자 제품이 섞여 있었고, 제조사 확인을 요청했지만 “그럴 수도 있지”라는 거만한 태도와 입금이 마무리되어 절대 반품을 해줄 수 없다고 선을 그어놓고 해결책을 논의하겠다는 응수에 할 말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2차 오더 진행은 어려웠고, 반품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됐으며 이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입니다.
문제는 ALC21도 밴더로서 신뢰를 잃게 됨에 따라 캐나다 연방정부는 물론 연결시켜준 업체와 사이가 틀어짐으로써 향후 사업에도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엄청난 비용이 발생한데다 양쪽 모두에게 신뢰를 잃어버림에 따라 정작 좋은 제품을 연방정부나 대형업체에 소개시켜주기 어렵게 됐습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북미 수입자들은 인맥을 이용하기보다 검증을 우선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번 경험을 통해 검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됐습니다. 단순히 친하다고 진행했다가 좋은 관계를 망칠 수 있고, 쉽게 한국 대행사를 믿었던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게 된 것입니다.
또 하나의 사례가 손세정제 건입니다. 돈이 된다고 하니 화장품 업체는 손세정제, 마스크 생산에 뛰어들었고, 의류업체는 방호복 제작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습니다.
손세정제 거래도 최소한 인증이 필요한데 준비도 하지 않았고 샘플 요청에도 시큰둥했습니다. (당시는 인증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죠) 아무리 급해도 인증 없는 제품을 컨테이너 분량으로 샘플 확인 없이 진행할 수 있을까요?
에이전시를 사이에 두기보다 ALC21은 차라리 비용을 더 들여서라도 안전한 업체와 진행을 했습니다. 그래도 가격을 맞추긴 너무 어려웠습니다. 특수 상황을 이용해 어느 정도 수익을 취하더라도 적정선이 있어야 관계가 이어질 수 있는데, 대부분 한탕을 노리거나 멀리 보지 못하는 등 관계 설정은 안중에 없었습니다.
잘된다는 분야라도 독점이 아닌 바에야 수많은 후발주자가 몰리다보면 수요를 공급이 앞지르게 되죠. 결국 컨테이너를 받는 시점에서 제조가보다 판매가가 더 떨어졌으니, 거래는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또한 뒤늦게 Health Canada에서 검증을 시작해 인증 여부나 성분에 대한 조사가 1년이 지난 지금도 나오고 있습니다. 다행히 이 부분은 완벽하게 준비를 해두었지만 만약 리콜이라도 받는다면 수입자는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게 됩니다. 한국 수출자는 이에 대한 책임이 없다지만, 수입자가 완벽한 검증을 꼭 해야 하는 이유를 헤아렸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코로나19는 특별하게도 인증 없이 진입이 가능했었고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 바이어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실제 이 시기에 첫 수출을 시작한 업체 중에서 잘 대응한 소수 업체는 지속적으로 시장을 열어가고 있습니다. 상황이 나아지면서 화가 난 바이어는 더 이상 ‘그때 그 업체’와 주문을 지속하지 않습니다. 뒤늦게 가격을 내리고 인증을 받겠다고 하더라도 한번의 나쁜 기억은 결심을 바꾸지 못합니다.
당시 거만했던 업체 담당자의 태도는 이제 180도 바뀌었습니다. 시장 선점 업체는 대부분 기반을 다졌지만 후발 주자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정말 많은 제품을 소싱(sourcing)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정부 및 병원에 납품하기 위한 비대면 체온계를 소개 받았는데, Made in Korea이기 때문에 퀄리티가 좋다고 해서 중국산보다 2배 이상 비쌌고 수많은 중간 업체들이 마진을 붙여 우리에게 더 비싸게 제안을 했습니다. 일단 샘플을 직접 구매해 테스트 했는데 오차 범위가 0.1-0.2도여야 할 체온계가 2-3도 이상 차이가 나면서 미처 검증 안하고 납품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안도했던 적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한국 고객사가 직접 개발한 제품을 수입하면서 ALC21이 인증, 라벨, 라이선스를 준비해 진행한 적도 있었는데, 캐다다 땅을 밟는데 반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그 사이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면서 생산가로는 판매가 불가능해, 사은품이나 기증용으로 쓰고 있습니다. 이런 일을 겪게 되면서 미리 시장을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됐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강조하지만 막상 이를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냥 안정적인 것을 꿈꾸고 남들과 같은 방식으로 눈앞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게 됩니다. 하지만 위기에 어떻게 대응을 하느냐에 따라, “결국 내게 한번은 온” 대박 기회로 탈바꿈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기회는 계속 올 것입니다. 부족한 점을 수정하고 준비하여 언젠간 상황이 나아졌을 때 경쟁자보다 우위를 점하길 바랍니다. 대신 이 칼럼을 읽은 분들 중에 '잠깐'에 머무시는 분은 자제 부탁드립니다. 제발!
ALC21 알렌 정 대표는...
ALC21의 창업자이자 대표 컨설턴트. Fuerza 북미대표, 제넥스엔터프라이즈 부사장, (사)식문화세계교류협회 해외홍보대사, 무역신문 칼럼니스트, 세계한인무역협회(OKTA) 2017-2018 부산시 글로벌 마케터 등 한국과 북미의 커넥터이자 다양한 직함으로 활동 중이다. ALC21은 토론토를 거점으로 15명의 스페셜리스트와 마켓리서치, 세일즈 마케팅 등 6개 팀으로 구성, 한국과 북미지역의 70여 개 단체, 기업의 온라인 마케팅과 세일즈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