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보건산업진흥원 책임연구원(FTA 국제통상 및 나고야의정서)
前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원
前 고려대학교 통상법연구센터 연구원
前 산업자원부 기술표준원 연구원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수료(국제법)
“나고야의정서는 유전자원까지의 범위로 강대국과 개도국 양측의 협상이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눈부신 과학의 발전으로 유전자정보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자원제공국은 유전자정보가 자국의 ‘이익’을 더욱 크게 부풀려줄 ‘캐시카우’로 재평가하기에 다다른다. 이제 자원제공국은 ‘유전자원’을 넘어 ‘유전자정보’도 나고야의정서 적용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나 이용국도 ‘유전자정보’ 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이다. 양측의 숨 막히는 공방은 진행 중이다.”
지금 자원이용국(선진국)들의 입장은 난감하다. 유전자원으로 나고야의정서 협의가 끝난 줄 알았지만 개도국이 새로운 카드로 압박을 가해와서다.
나고야의정서가 채택되기까지 선진국은 유전자원만을 이익공유의 대상으로 한정하기 위해 개도국과 파생물의 포함 여부 논의를 힘겹게 이어왔다. 그런데 나고야의정서 채택 이후 개도국들이 DSI를 협상 테이블에 올리며 이견을 제기했다. 브라질, 말레이시아 등 자국의 국내법에 이미 유전자정보를 포함해서 운영하는 국가도 속속 나타나는 추세다.
사실 DSI 문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제13차 생물다양성협약총회(멕시코 칸쿤 개최)였다. 이 총회에서 DSI가 생물다양성협약과 나고야의정서에 잠재적 관련성을 논의해봐야 한다고 결정되자 당장 전 세계 바이오산업 관련 다국적 기업, 연구소 등이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사안에 대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함이다.
이들은 성명서를 통해 현재 자유롭게 인정되는 유전정보 오픈데이터에 대한 접근 보장이 지금의 과학발전에 이바지했는지 강조했고 WHO 등에서도 정보가 공중보건 위기상황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역설했다.
#2. 개도국 '유전자원=유전자정보' 강력 주장
한편, 자원이용국의 반발이 거세지자 개발도상국의 논리는 더욱 치밀해졌다. 예전 제국주의 시절 강대국에게 힘없이 약탈당했던 바이오파이러시에 대한 감성적 논리를 넘어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과 미래의 과학발전을 예측한 결과를 토대로 “현재의 논의가 눈에 보이는 유전자원 자체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바이오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현재 시점에서 그 끝을 알 수 없고 엄청난 경제적 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나고야의정서에 대한 법적 해석이든 과학기술 수준을 논하든 선진국과 개도국의 쟁점은 좁혀질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논쟁이 오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나고야의정서가 환경법이 모법이고 그 메커니즘이 결국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한 목적이라는 점을 모두 잊고 있는 것 같다. 바이오파이러시를 막자는 좋은 취지에서 시작한 논의가 경제적 논리 싸움으로 변했다. 원래의 초심을 모두 잃어버린 것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또 간과한 것이 있다. 법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안정성’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나고야의정서를 인식한지 얼마 되지 않은 우리 기업에게 그 대상이 유전자원뿐만 아닌 유전자정보까지 넓혀진다고 가정하면 어마어마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번 총회에서는 어떠한 결론도 매듭지기가 쉽지 않았다. 추후 DSI 협상의 접점을 찾기 위한 전문가 회의를 운영해 △나고야의정서의 범위 및 대상인지 여부 △추적가능성 △모니터링 시스템 연구 △능력배양 △펀딩 등의 내용을 계속해서 논의할 예정이다.
현재 아이치타겟(생물다양성협약전략계획(2011-2020) 세부목표) 종료를 2년 앞둔 상황에서 당사국들은 이를 대체할 POST 2020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의 구체적인 논의를 위한 개방형 작업반을 2019년부터 향후 2년간 운영하기로 합의했는데 여기서도 DSI 논의가 포함됐다.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총회는 2년 뒤인 2020년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될 예정으로 DSI에 대한 2년간 회의 결과에 대해서 당사국들은 다시 모여 기 싸움에 돌입한다.
#3. 나고야의정서 지속적인 관심 및 정부, 기업 선제적 대응 필요
그렇다면 우리 정부와 기업은 무엇을 준비하고 대응해야 할까?
현재 우리나라는 2017년 나고야의정서를 가입하고 국내법이 이행되고 있으며 우리 기업들도 나고야의정서를 인식하기 시작한 단계다. 우리나라는 바이오산업이 급성장 중인 반면 원료의 해외의존도가 높아 나고야의정서의 파장이 클 것으로 생각된다. 향후 나고야의정서가 기업의 R&D와 수출에 있어 걸림돌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나고야의정서의 범위 확대를 억제하고 법적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국제협상에 최선의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이다. 우리 기업들은 나고야의정서의 실질적인 주체로서 국제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반드시 대응방법을 준비해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 과학기술 수준을 정확히 진단하고 어떠한 국제논의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바이오기술을 발전시켜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