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화장품산업 최초의 생일 잔치를 앞두고 식구도, 손님도 내용을 모르는 ‘깜깜이’로 치러지는 초유의 일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17일 잠정적으로 정해졌다고 하지만 아무도 이를 확인해 주지 않는다. 식구(食口)인 화장품 종사자들 대부분 생일(生日)을 모르니, ‘비즈니스의 롤’도 잊고 산다.
기자가 몇몇 사람에게 행사 날짜만 귀동냥한 게 전부다. 과연 79년 화장품 역사를 기념하려는 취지나 의미 등이 무엇인지 아무도 설명하지 않는다. 당초 식약처는 화장품법을 제정한 날(1999년 9월 7일)을 ‘화장품의 날’로 선포하고 행정절차 상 2024년에 한해 10월 중 식약처장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개최 일주일도 안 남은 10월 10일 현재 행사 진행 관련 내용을 공지하지 않고 있어 궁금증과 의문을 낳고 있다. 행사 개요나 식약처장 참석 여부조차도 불분명 한 채 이를 주관하는 대한화장품협회도 “행사한다는 건 알고 있지 않느냐”는 식의 답변만 내놓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부 시상식 수상자에게 참석 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몇몇 관계자만 모이는 깜깜이 행사가 아니냐는 비판이 일어나고 있다.
당초 화장품의 날 제정은 지난 2월 20일 대한화장품협회 75회 정기총회에서 처음 발표됐다. 이후 3월 25일 식약처 고지훈 화장품정책과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이를 확인한 바 있다. 그는 “올해 10월 중 킨텍스에서 첫 화장품의 날 행사를 열 계획이다. 올해 내 법제화하고 매년 번듯한 행사가 되도록 지원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대한화장품협회 연재호 부회장도 “화장품산업 종사자들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환영한 바 있다.
화장품산업은 2024년 수출 100억달러 고지 달성을 코앞에 두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정부 부처들도 너도나도 K-뷰티 육성 방안 또는 수출관련 각종 지표를 발표하며 ‘숟가락’을 얹고 있다.
식약처도 수출담당관을 신설하는 등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고, 규제 외교로 산업계의 박수를 받았다. 주무부처로서 ‘점프업 K-코스메틱’을 통해 소통을 강화하는 한편 ‘화장품의 날’ 제정 등 업계 건의에 유연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만 모든 일이 식약처 주최 대한화장품협회 주관으로 진행되다 보니 장협이 단일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화장품의 날 행사 진행에서 보듯 정작 말단까지 골고루 정보가 흐르지 않는 폐단이 생기고 있음도 부인하지 못한다.
화장품산업계는 현안이 생기면 식약처가 지침을 주지 않은 건지, 이익단체인 장협이 안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관심이 덜한 건지 장협이 움직이지 않으면 될 일도 안되고 안될 일은 아예 거론조차 못하는 업계 풍토가 관행이 됐다. 나쁘게 말하면 관치에 익숙한 데서 오는 수동적, 피동적 역할이다.
수많은 과제에 맞닥뜨린 화장품산업으로선 화장품의 날 행사는 솔직히 깜냥도 아니다. 환율 덕 수출 호조에 가려서 그렇지 내수 부진에 수많은 중소기업이 고전하고 있다. 글로벌 규제는 시시각각 조여오고 화장품 공급사슬도 삐걱대며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잘 나갈 때 캐즘(chasm)을 걱정하고, 경쟁력 약화 원인을 찾아 과감히 수술해야 함은 상식이다. 중국,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K-뷰티를 벤치마킹하고 자국산업 발전과 수출 드라이브를 추진하려는 국가와 기업의 견제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화장품의 날’ 행사는 그냥 생일 잔치로 치르면 그만일 수 있다. 그러나 ‘생일’을 기념하는 이유는 이날을 계기로 새로운 각오나 새로운 출발, 새로 태어나는 기분으로 살아가라는 ‘다짐’ 때문이다.
희로애락의 생일을 기억하면서 화장품산업의 건강함을 되새겼으면 좋겠다. 그러나 올해 첫 ‘화장품의 날’ 생일을 기억할 만한 일이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