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이 안전하지 않다면 그건 법적으로 불법·위법·탈법이다. 위해평가는 잣대이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소비자 불안을 넘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어야 화장품산업이 존재할 이유를 가진다.
11월 1일 열린 (사)소비자권익포럼 주최 ‘화장품 위해평가 현황 및 국제동향’ 세미나는 소비자를 ‘안심’시킬 수 있는 업계의 노력과 커뮤니케이션, 제도적 보완에 대한 의견이 제시됐다.
세미나는 ‘화장품 위해평가 현황 및 국제동향’(엘스안전성효능연구원 임두현 대표)과 ‘화장품 안전 이슈 및 소비자 보호방안’(미래소비자행동 최지현 이사, 화장품비평가)의 발제에 이어 전문가들의 지정토론 형식으로 진행됐다.
미래소비자행동 최지현 이사는 최근 이슈로 제기됐던 △중국 임산부 모유 자외선차단제 검출 △과불화화합물 국내 화장품 검출 △염모제 1,2,4-THB 안전 논란 등의 사례를 들고 ‘화장품 위해평가의 개선방향’을 제안했다.
그는 “안전을 다루는 시대는 지났다. 불안을 다루어라”라며 “하지만 과학은 불안을 반영하지 않는다. 화장품에선 위해평가가 불안을 해소시켜야 하고, 아무리 작은 위험도 근거 자료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하물며 소비자의 ‘정서적 불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 임산부 모유 자외선차단제 검출’은 언론이 논문 원문을 확인하지 않고 인용 단위의 중복(pg, ng) 등 번역 오류, 모유의 지방 속 검출량의 불확실한 자료임에도 ‘모유 먹는 아이에게 영향은?’에 초점을 맞추면서 논란을 야기했다고 비판했다. 이는 막연한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화장품의 위해평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고 지적했다.
겨우 20개를 모집단으로 조사해 10개에서 검출됐고, 축적된 과불화화합물이 발암성 등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만 부각, 소비자 불안을 자극했다고 지적했다. 실제 2022년 실시한 국립환경과학원의 국민환경보건기초조사는 “과불화옥탄산(PFOA)의 혈액 중 농도는 성인과 중고생에서 각각 6.43㎍/ℓ, 3.66㎍/ℓ로 독일의 권고값인 10㎍/ℓ(PFOA) 20㎍/ℓ 보다는 낮다”고 밝혀졌다. 식약처도 이미 2015년과 2022년 통합 위해성 평가를 한 바 있으며, 2021년 12월 과불화화합물 8종을 금지원료에 추가했다.
1,2,4-THB 논란도 식약처가 이미 위해평가를 마치고도 금지 조치를 미룬 사이에 모다모다가 해당제품을 출시하고, ‘중소기업 탄압, 신기술 규제’라는 프레임을 설정해 언론플레이를 펼침으로써 소비자 혼란만 가중시켰다고 비판했다. 게다가 규제개혁위원회도 식약처의 말을 듣기는커녕 업체에 놀아나는 황당한 조치로 위해소통 능력 결여를 보여줬다고 힐난했다.
최지현 이사는 “주기적 안전 이슈 점검 및 대응 시나리오 작성, 선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위해평가에 이어 위해소통 전문팀이 필요하다. 아울러 위해평가 기본 지식을 소비자에게 알리는 교육 및 홍보 콘텐츠 제작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첫 발표에 나선 임두현 대표는 “성분만이 아닌 불순물의 위해성이 높다. 이는 기업이 해야 할 일이다. 위해평가→안전평가가 글로벌 스탠다드로 자리잡았고 CIR(미국) SCCS(유럽) 등도 안전평가와 과학적 효능 평가를 중시한다”고 발제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분을 안전하게 만들 때 과정이 중요하다. 유럽이 안전하게 제조했다는 근거 자료를 요구함에 따라 단순히 성분의 위해평가를 넘어 안전평가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즉 “화장품의 위해 요소는 ▲제품에 있는 위험(성분+불순물) ▲사용하면서 발생하는 위험(사용 중 미생물 오염, 용기로부터 위해물질 전이) ▲사용시 발생하는 위험(오사용, 용기 자체 위험) 등이 있다”라며 “성분은 원료로부터 기인하며, 성분 평가를 바탕으로 원료의 평가, 기준 규격이 중요하다”며 그는 인식 전환을 제안했다.
지정토론에서 동국대 약학대 이무열 교수는 “모든 관리와 규제에는 비용이 소요되며, 그 비용은 소비자에게 전가되기 쉽다. 따라서 비용-효용 간의 합리적인 판단과 선택이 중요하다. 화장품의 위해평가가 최대한의 안전을 강조함으로써 ‘의약품 수준’으로 관리되기보다 소비자와의 위해성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비자시민모임 윤명 사무총장은 “화학물질의 안전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섞일 경우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다. 미용, 건강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증가되는 시점에서 정보를 주지 않으면 걱정과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위해관리를 통한 제품관리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또한 “화장품은 예뻐지기 위해서→피부보호로 강화되고 있다. 산업만 보게 된다면 소비자 인식과 위험을 느끼는 강도, 우려와 다르지 않을까 싶다. 화장품의 위해평가는 종합적으로 안전한가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성신여대 뷰티산업학과 김주덕 교수는 “소비자의 불안감을 자극시키기보다 정확한 위해 정보를 소비자와 소통해서 불안감을 제거하고 안심시킬 수 있는 소통 채널(예: EU의 SCCS, 미국의 CIR)이 만들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대한화장품협회 장준기 전무는 “유럽은 기업책임주의가 발달했다. 우리나라는 정부가 위해평가 관리를 시행하는데 안 믿는 경향이 있다. 정부 관리→기업 준수로 방향이 바뀌어 기업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이와 함께 위해성 평가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여 오해하지 않고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위해평가의 책임주체를 명확히 할 것을 제시했다.
네모브랜즈 신선미 이사는 “유럽의 경우에 비춰 한국화가 필요하다. 위해성(법적 판단)과 안전성(인체에 안전 보증)의 간극을 메워야 한다. 안전에는 비용이 들어가야 하는데 중소, 영세기업이 많은 화장품업계가 이를 감당할 수 없다. 정부 지원이 필요한 대신 엄격한 감시가 필요하다. 소비자 보호에 기여하기 위해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며 주체별 책임을 강조했다.
화장품 위해평가 토론회를 수년간 지켜보면서 화장품을 둘러싼 주체들이 여전히 정부(식약처)만 쳐다보는 데 식상할 정도다.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선진국에선 화장품 이슈가 제기되지도 않을뿐더러 정부가 입장을 표명하는 일은 드물다.
위해평가는 기업의 윤리와 책임이 가장 크다. 다만 역량이 부족한 현실에서 정부와 소비자단체의 감시·감독은 필요하다. 기업에게 ‘안전성 담보’를 강력하게 요구하되 제도 정비와 역량 강화 지원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위해평가에 미달된다면 당연히 불법 화장품이다. 무엇보다 “내가 생산하는 화장품이 소비자를 불안하게 하지 않겠다”는 화장품산업의 강고한 선언이 우선이다. 위해평가를 공포 마케팅으로 이용하는 소모적 경쟁으로 K-뷰티의 글로벌 경쟁력을 갉아먹는 현상도 차제에 고쳐진다면 더할 나위 없다. 화장품기업들은 이웃 기업을 쳐다보지 말고 글로벌 무대에서 ‘안전성’을 평가받아야 한다는 의지를 다지고 적극 실천하는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