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는 현실이고 생존 위협을 느낀 무수한 중소기업이 ‘제조원 삭제’에 목을 매는 형국이다. 반면 품질·안전 책임을 1인 책임판매업자가 부담할 수 있는가, 소비자의 표시정보 알권리를 보장해달라, 제조업자의 R&D 동력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는 반대 의견은 꼬리를 잡으며, 논란을 키웠다.
27일 ‘화장품 제조업자 자율표시 개정, 왜 필요한가?’ 공청회가 발의자인 김원이 의원이 주최하고 국회 K-뷰티 포럼 주관하에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회의는 지난해 11월 보건복지위 상임위원회 토론에서 검토된 “화장품제조업자 표기 의무 삭제에 찬성하는 책임판매업자, 중소제조업체, 수입업자의 입장과 반대하는 소비자단체 및 대형제조업체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의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논의하는 과정”(김원이 의원 발언)으로 마련됐다. 회의 좌장은 더불어민주당 조원준 보건복지전문위원이 맡아, 매끄러운 진행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
김원이 의원은 “K-뷰티가 세계 4위국으로 성장하면서 전체 수출의 66%(36.45억달러)를 담당하는 중소기업이 해외시장에서 모방제품으로 인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제조원 의무 표기로 인해 주요 수탁제조사의 독점이 발생하거나 해외업자의 유사품 제조 의뢰로 국내 수출기업에 타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며 “소비자 알 권리와 제품의 품질 저하라는 의견도 나온 만큼 오늘 진일보한 토론을 통해 간극을 줄여 부족한 점을 메우고 우려되는 점을 보완하도록 허심탄회 하게 말씀해 주기 바란다”라고 인사했다.
토론회에서 거론된 키워드는 중소기업의 수출 피해’, ‘모방제품(copycat)’, ‘수탁제조사 독점’, ‘소비자 알권리’ 등에 모아졌다.
발제자로 나선 코스모닝 허강우 이사는 “전체 화장품 수출액 중 중소기업 비중이 74%(‘18)를 정점으로 59%(’21. 1Q)로 하락하는 등 모방제품으로 인한 피해자는 중소기업(브랜드사)”이라며 “취재 현장에서 ▲중소기업 피해는 ‘제조원 표기’ 의무 조항에 근거 ▲‘수출용 제품 예외’(30조)는 제조업자의 해외기업 수주 조항일 뿐 ▲자율표기로만 변경해도 상황에 맞는 대처가 가능하다 등의 현실 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대한화장품협회 장준기 전무는 “현행 화장품법은 책임판매업자(제조위탁자)가 품질·안전 등 총체적인 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제조업자(제조수탁자)는 책임판매업자의 지도·감독 및 요청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제조원 표기 개정 배경에 대해 △수출기업 타격 △중소기업의 성장 사다리 붕괴 방지 △현행 화장품법 체계와 부합 △책임자를 표시하는 글로벌 기준과 조화 등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렇다면 중소기업의 피해는 어느 정도일까? 한국화장품중소기업수출협회 박진영 회장은 “브랜드사의 아이디어로 립틴트를 개발 홈쇼핑 등에서 판매 후 중국 진출을 모색했으나, 이미 똑같은 제품을 중국업체가 제조사를 통해 공급받고 있어 중국시장 도전이 무산됐다”며 직접 겪은 피해 사실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화장품법은 책임판매업자(브랜드사)가 성분, 함량, 향, 소비자 취향 등을 고려해 제조사에 의뢰 생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소비자가 제조원 삭제로 인해 품질·안전에 대해 불안할 이유가 없다. 정작 소비자는 글로벌 브랜드의 공장명을 보고 구매를 결정하지 않는다. 국익을 위해서라도 제조원 표기 삭제는 당연하다”고 역설했다.
이에 대해 피부과학응용소재 선도기술 개발사업단 임병연 국장은 “K-뷰티 수출에서 브랜드사 or ODM사 누가 더 기여하는가? 중소기업이 품질 관련 법적 책임능력을 감내할 수 있는가? OEM과 ODM의 경우 지적재산권이 누구에게 있는가? 세계 1, 2위 ODM기업의 연구개발 위축과 품질 저하 우려 등은?” 등을 제기하며 “중소기업의 역할, 모방제품으로 인한 피해사례에 대해 공감하지만 긍정과 부정 영향이 균형있게 논의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울트라브이 권한진 대표는 “이데베논을 약 1500만병 누적 판매하면서 ‘모방 상품’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데베논 성분이 12,000ppm인 것을 알고 모방사가 15,000ppm을 마케팅 카피로 내세우며 경쟁을 부추키더라”라며 제조사 횡포에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중국 판매를 위해 왕홍 마케팅을 하던 중 왕홍이 제조사 방문을 요청해 허용했더니, 다음부터 제조사가 직접 왕홍에게 제품을 공급하더라. 결국 그 해 제조사는 당사보다 높은 1천만불 수출탑을 받았다”며 “이렇게 되면 브랜드사가 자체 생산공장을 지을 수밖에 없다. 또 수출용 제품에 제조사 표기 삭제를 요구했으나 제조사로부터 거절당했다. 대형 제조사가 이기적인 욕심으로 여기저기 공급한다면 제품 가치와 경쟁력도 사라지고 더 나아가 모두 공멸에 이를 수 있다”고 피해를 호소했다.
이어 “중국시장에서 K-뷰티는 C-뷰티, J-뷰티 사이 샌드위치로 전락, 2~3년 안에 사라질 위기다. 이미 수많은 연구원이 중국업체에서 일하고, 제조사가 대거 중국공장을 설립한 상태에서 라벨 하나만 보고 전화가 수십, 수백 번 온다. 제조사는 품질에, 책임판매업자는 제조 기획에서부터 유통판매까지 각자에 충실하여 서로 win-win 하길 바란다”라고 말을 맺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이정수 사무총장은 “제품 구매 시 중요한 정보원인 표시사항에 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면서 소비자 입장 고려없이 추진하는 것 같다”며 비판했다. 이어 “약사법, 의약품, 식품법, 의료기기법, 건강기능식품의 표시기준 등에 제조업자 및 위탁제조업자의 상호와 주소를 모두 기재하고, 수입업자도 제조국과 상호를 표시하는데, 화장품만은 시대착오적 행위다. 소비자 불안을 줄이기 위해 2018년부터 제품 표시사항에 대한 각종 조치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납득하기 어렵다”라고 꼬집었다. 또 이력관리시스템 대안 없이 제조원 표기 삭제는 위험한 시도이며, 표시제도는 소비자 중심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녹색소비자연대 은지현 상임위원도 “누구를 위한 개정인가?”라며 반문하며 ‘화장품종사자 모임’ 카페방을 근거로 ▲1인 사업자에게 책임판매업 내주고 제품을 관리할 수 있는가? ▲월 30만원 알바가 관리자로 등록하는 예를 들며 ‘관리자’ 고용이 의무사항인데 과연 이렇게 해서 관리가 가능한가? ▲책임판매업자와 제조업자 사이에 소비자가 제품 관련 정보 요청 및 전달 위치에 있는데 소비자의 생각과 입장이 중요하다 등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그는 “모방제품으로 인한 수출 피해자가 중소기업이라고 하는데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사례와 수치를 제시하라, 소비자의 알권리가 중요한데 편협되고 지엽적인 이익집단을 위해 소비자 입장이 침해되는 경솔함이 없어야 한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법무법인 율촌(유)의 김기영 변호사는 “개정안은 화장품법 체계의 부조화를 시정하는 내용으로 ①제조업자는 수탁제조자에 불과 ②2011년 개정시 품질과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제조업자를 포함시킨 것은 책임판매업자 제도를 도입한 법 취지에 부합되지 않으며 ③대형 제조업체의 독과점 강화, 중소 책임판매업자는 제조사를 통하지 않고 시장 진입이 어렵고, 대형 제조사의 마케팅 채널로 전락 등 화장품시장의 공정한 경쟁을 왜곡시킴으로 법률에서 시정해야 한다”고 찬성 이유를 소개했다.
이어 김 변호사는 반대 주요 이유인 ‘소비자 알권리’ 검토에서 “①본 개정안은 소비자의 알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며 ②소비자 알권리에서 책임판매업자 표기는 품질·안전 책임을 부담하는 자이므로 소비자 선택의 필수 지식이지만, 제조원 표기는 소비자 선택에 도움이 될 뿐, 알권리 제약이나 침해가 아니며, ③유명 화장품업체는 모방제품 출현을 방지하기 위하여 제조원을 영업비밀로 취급 ④개정안은 제조원 표기를 책임판매업자가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해 결론적으로 소비자의 알권리를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또 타 유사제품에 관한 법령상 제조업자 의무 표기 경향에 대해 “해당 법률은 판매업자가 아니라 제조업자들이 제품의 품질과 안전의 직접적인 책임을 부담한다. 하지만 화장품법은 책임판매업자가 제품 안전 및 품질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제조업자는 책임판매업자의 지휘 감독을 받도록 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고 지적, 차이점을 분명히 했다.
덧붙여 개정안이 제조업자의 연구개발과 품질관리에 대한 동력 상실을 유발한다는 주장에 대해 ①값싼 제조사만 찾고 원가절감에만 관심을 가지면서 연구개발에 등한시 할 것이라는 주장은 객관적 근거가 없고, 화장품법 체계상 납득할 수 없고, ②화장품법 체계상 책임판매업자는 소비자 선택을 받고, 제조사는 책임판매업자로부터 선택 받는 구조로, 제조사가 연구개발을 등한시한다는 것은 논리 비약 ③값싼 저질의 제조업자는 시장에서 도태 ④현행 법이 대형 제조사의 독과점을 점차 강화하고 책임판매업자의 사실상 연구개발 기능의 상실 현상을 방치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그는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결국 화장품법 본래 취지에 따라 책임판매업자는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전세계에 확대해 나가는데 역량을 모으고, 제조사는 우수한 제품생산기술을 확보함으로써 우수한 책임판매업자의 선택을 받아 우수한 제품을 생산하는데 역량을 모으는 방향으로 산업을 유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개정안의 의미를 부여했다.
공청회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코로나19로 인해 참석이 어려웠으나, 박병석 국회의장, K-뷰티 포럼 대표인 김상희 국회부의장,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 송기헌·고영인·양정숙 국회의원 등이 K-뷰티 산업 발전을 기원하는 인사말을 전해왔다.
애초 화장품 업계는 “오더만 많이 가져오라. 대신 우리가 우수한 품질의 화장품을 제조해주겠다”라는 브랜드-OEM/ODM사간 동업자 정신이 있었다. 이는 "생산과 판매 분리 가속화, 전문적인 영역 구축은 물론 연구기술에 대한 투자 강화로 제품력을 담보하고, 시대적 흐름에 맞춘 신제품을 양산하면서 인식변화가 이루어진 것이 주효했다".(대한화장품산업 60년사) 이후 브랜드사 및 제조사 임직원이 대거 창업하면서 화장품업계가 풍성해졌고, 만년 무역수지 적자에서 벗어날 토대를 마련했다.
그런데 ODM 빅2의 욕심이 화장품법 개정안을 두고 갈등을 빚었다는 게 중론이다. 이미 대한화장품협회 이사회에서 '찬성'으로 합의했음에도 받아들이지 않고 화장품업계 분열을 초래했다.
결국 중국시장을 놓고 ▲제2 내수시장화 or ▲하청공장으로의 전락이냐는 관점에서 ‘제조원 표기 삭제 개정안’을 엄중히 들여다봐야 한다.
글로벌 브랜드사들은 왜 2~3조원을 들여가며 AHC, 닥터자르트, 난다를 인수했을까? 차라리 그 브랜드사의 제품을 만든 ODM사를 인수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1인기업에서 출발하지 않은 브랜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