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화장품기업인 아모레퍼시픽에겐 ‘skin'이 없다? 22일 아모레퍼시픽 본사 앞에 모인 200여 명의 아리따움 가맹점주의 집회를 보며 느낀 의아스런 점이다.
이날 전국아리따움가맹점주협의회(이하 전아협)가 ’아모레퍼시픽 생존권 위협 중단 및 상생 촉구 집회 기자회견‘에서 내건 요구사항은 의외로 간단하다. “대화에 나서라”는 것이다.
#1 살려 달라, 더불어 함께 살아보자 요구
본사의 갑질을 규탄하는 게 아니라 ‘바른 정책을 펴라’고 한다. 본사의 불공정한 처우를 타도하는 게 아니라 ‘공정’을 강조한다. 본사의 가맹점주에 대한 불공평에 대해 ‘상생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고 결의한다. 이게 전아협이 내건 ‘우리의 결의’ 3개항이다. 대화를 꺼리는 아모레퍼시픽의 속내가 궁금해졌다. 그 배경은 김익수 회장의 발언에서 밝혀진다.
전아협 김익수 회장은 “오늘 이 자리에서 말하고 싶은 화두는 두 가지 단어로 압축된다. ‘①살려 달라 ②더불어 함께 살아 보자’다. 아모레퍼시픽과 싸우자는 게 아니라 함께 머리를 맞대어 상생의 마음을 전하려는 전국 670여 아리따움 가맹점주의 의지를 전하는 자리”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집회 결정 시부터 분명한 평화 집회라고 천명했고, 강요가 아닌 자율 의지로 참석을 권유했다. 하지만 본사가 조직적인 회유 등 집회 참석을 방해한 데 대해 반드시 그 책임을 물을 것이다. 가맹본부가 당당하고 떳떳하다면 가맹점주의 집회 결사의 자유를 방해할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가맹점주들이 취급 제품의 ‘무분별한 유통을 근절하라’는 요구가 터무니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오죽하면 가맹점주 사이에 자조적인 얘기가 ‘최대 가맹점주는 올리브영’이라는 거다. 10년 전 아리따움 출범 시 고위 임원이 강조한 ▲대를 이어 물려줄 수 있는 명품 가맹점주가 되게 하겠다 ▲특정 제품을 아리따움에서만 판매할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또한 “아리따움몰을 시작할 시점에서 ‘아리따움몰은 제품 판매가 목적이 아니라 아리따움 및 가맹점주의 홍보를 위한 것’이라는 약속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분노했다.
김익수 회장은 “①취급 제품의 올리브영 등 신진 가맹업체에 대한 공급을 즉각 철수 ②특판 등 온라인 쇼핑몰의 판매 중단 등을 요구한다”며 “전체 가맹점주의 80% 이상이 가입한 전아협은 아모레퍼시픽 대표와의 회동을 강력히 요청하며, 받아들일 시 집회 및 외부 행동을 자제할 것을 천명한다. 아모레퍼시픽은 즉각 전아협과의 상생협의를 시작하라“고 촉구했다.
#2 가맹점과 협의 없는 상식 이하의 할인행사
가맹점주의 불만은 연대 발언에 나선 에뛰드하우스 증평점 송봉순 대표의 발언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는 “급격한 매출 하락으로 폐점하는 가맹점주가 늘고 있는데, 그 직접 원인은 본사가 직접 운영하는 각종 온라인몰 운영 때문이다. ①직영몰·특판·11번가와 연계된 본사의 제품 밀어내기식 잦은 행사와 ②각종 상식 이하 할인율 때문에 가맹점의 수익률이 떨어지고 있다. ③늦은 정산으로 현금 확보가 안돼 매장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송 대표는 “정기 세일 외 한 달 내내 벌이는 각종 세일이 폐점 원인이 되고 있다. 저의 경우 ▲1일이라고 1+1 행사 ▲11번가와 연계해 11일부터 말일까지 쿠폰 행사 ▲19일이라고 19%+19% 할인 행사 ▲22일 중복(中伏)이라고 커플 중복 할인 등 참 기막히다”라고 울분을 토했다.
덧붙여서 송 대표는 “△본사의 가맹점을 호구로 아는 인식 전환 △가맹점 생존권 보장 위해 온라인몰 폐쇄 △가맹점과 사전 동의 없는 무분별한 할인행사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아리따움, 에뛰드하우스, 이니스프리, 특판, 3만5천여 카운셀러 등을 산하에 두고 있는 아모레퍼시픽 가맹본부는 그야말로 총체적인 난국이다. 지난 3월 19일 있었던 전국화장품가맹점주연합회(화가연) 발족과 전국이니스프리가맹점협의회의 용산 본사 집회, 6월 23일의 아모레퍼시픽 방판협의회 특약점 경영주 250명, 가운셀러 1만170명의 ‘생계대책과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연대서명서’를 서경배 회장에게 등기로 발송 등 잇단 불협화음은 글로벌 기업 아모레퍼시픽의 이미지를 크게 훼손하고 있다.
가맹본부와 가맹점주들의 갈등은 현 상황을 내다보는 시각차가 분명하다. 이날 집회 격려 참석한 화가연 전혁구 회장은 “가맹본부는 경기침체, 사드 갈등, 편집숍, 온라인판매 때문이라고 호도하는데, 근본원인은 가맹점만 도외시하고 대기업만 살려는 이기주의가 문제”라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온라인마켓에서의 불공정한 유통 횡포, 경쟁업체 올리브영에 가맹점의 주력 제품을 공급하는 부도덕한 유통다변화 정책, 과도한 할인 경쟁, 할인 정산마저 가맹점주에게 전가시키는 악행 등 아모레퍼시픽의 상생을 찾아볼 수 없는 태도에서 비롯됐다”며 성토했다.
#3 아모레퍼시픽, 행동과 책임의 균형을 가져라
업계에서는 빠른 사회적 변화로 인해 기존 영역과 법칙이 무너지고 경계가 흐려지는 빅블러(big blur) 현상 때문이라는 해석도 있다. 하지만 영역 파괴에 무한경쟁에 내몰리면서, 아모레퍼시픽 가맹본부가 O2O 시장에서 제대로 대응을 못한다는 비판이 거세다.
즉 유통 변화가 온라인으로 기울자 가맹본부와 가맹점의 괴리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행동과 책임의 균형을 잃고 있다는 지적이다. ‘스킨 인 더 게임(Skin in the Game)'이란 “자신이 책임을 안고 현실(문제)에 참여하라”는 뜻을 가진 용어다. 월가의 현자 ’나심 탈레브‘와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투자와 리스크 관리에서 강조하는 말로, 전세계 경제·정치·금융·사회 등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이 책에서 나심 탈레브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책임의 균형이 이뤄져야 한다. 책임의 균형에 반하는 논리는 전부 거짓이다"라고 말한다. "사회 정의를 바란다면 리스크와 이익의 균형, 리스크의 공정한 배분에 주목하라"는 주문이다. "선택과 책임의 불균형이 가져올 위험한 미래"에 대한 경고를 발하고 있는 것이다.
74년 역사의 아모레퍼시픽은 가맹사업으로 글로벌 top 12의 반열에 올랐다.(WWD 100, 2018) 그 사이 급격한 유통질서의 변화 속에서 부동의 1위를 지켜온 ‘skin'의 강자다. 하지만 최근의 가맹점주와의 관계에서 무책임, 불공정은 아모레퍼시픽의 모습이 아니다. 가맹점주와의 ’skinship'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전아협 김익수 회장의 ‘대화’에 적극 응해야 한다. 아모레퍼시픽이 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