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뷰티는 삶이다
외모꾸미기(beautification)가 삶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에 도전하는 페이스페인팅 아티스트가 박미정 교수(우송대 뷰티디자인경영학과)다. 그는 ‘멋지게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아름다운 외모꾸미기란 무엇인가?’를 삶 속에서 표현해내는 행동주의자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외모꾸미기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시도다.
메이크업(make-up)의 본래 의미는 ‘여성의 매력을 높이는 행위‘다. 박 교수는 “메이크업은 일상의 외모꾸미기로 미적 주체인 여성의 생각을 담아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거”라며 “뷰티는 삶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아름답게 꾸미려는 화장의 기원이 △종족 번식 △동물로부터의 신체 보호 △로코코 시대의 패치 △눈 보호 위해 눈 화장 등에서 비롯됐다”며 “요즘엔 나를 표현하는 도구이자 여성을 대변하는 심미적 이유로 메이크업의 아트(art)화가 필요하다. 내가 페이스페인팅에 주목한 이유”라고 설명한다.
박 교수는 자유롭고 자극적인 강의 스타일로 유명하다. 처음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테크닉을 가르치지 않는 교수법에 당황하고 어려워한다. 그러다 학기말이 되고 박 교수의 자극에 반응을 할 때쯤이면 메이크업의 본질을 깨닫게 된다. 창의력이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의 길을 인도한다는 깨달음이다.
“첫 강의 때 3초 안에 꽃을 그리라고 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대부분 데이지꽃 모양을 그린다. 어려서부터 꽃=데이지라는 고정관념 때문이다. 이후 똑같이 따라 하지 마라, 모델한테 어울리는 색을 찾아라, 네 생각을 느낌대로 표현하라고 주문한다”며 “중국 유학생에게도 창의성을 강조하며 한국의 정서를 접목한 메이크업을 가르친다. 그래야 다시 한국을 다시 찾아온다”고 그는 말한다.
박 교수는 “지적을 당한 학생들이 ‘학점은 짜도 오래 기억에 남는 수업이었다”며 “지적질을 많이 한 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자주 찾아온다”고 밝게 웃었다.
이는 파리에서 잠깐 머물며 공부하던 시절 박 교수의 경험이 담긴 교수법이다. 그는 “메이크업 순서가 베이스-파운데이션-파우더-눈썹 순이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매 교시 교수들의 메이크업 스킬이 들쑥날쑥 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각 교수의 스킬을 섞어서 너만의 테크닉을 창의적으로 만들라’는 주문이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유치원 미술수업 견학의 충격도 전했다. 교사는 어린이들에게 다양한 꽃 사진을 보여주고 느낌을 스케치북에 표현하라고 했다. 아이들도 자기 느낌대로 다양하게 그렸다. 그중 한 아이가 검정칠을 하는 게 눈에 띄었다. 한국 같으면 정서불안 또는 결손가정 아이인가 의심을 할 거다. 그런데 “아이가 밤에 달빛에 비친 꽃밭을 그리고 중간에 하얗게 비어 있는 곳은 빛이 반사된 거라고 설명하더라. 순간 소름이 끼쳤다”고 박 교수는 말했다. 프랑스는 5세 미만에 많은 컬러를 보여줌으로써 색깔 보는 능력을 키워준다고 전했다.
#2 메이크업 & 페이스페인팅
박미정 교수는 “메이크업은 감동이 있어야 한다. 모델을 앉혀놓고 시연을 하면 학생들은 교수님이 쓰는 섀도 컬러가 뭐에요? 어떤 리퀴드 파운데이션 몇 호 쓰셨나요? 라고 질문을 하는데 당황스럽다. 모델이 틀린데 일률적인 테크닉을 가르쳐달라는 게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이미지·피부톤·눈동자 색깔이 다르므로 모델에게 가장 어울리는 메이크업을 고민해서 시연하라고 학생에게 요구한다”며 “그 후에 토론하며 창의적인 메이크업을 배우고, 더 나아가 작가의 생각을 표현함으로써 감동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미술교육이 어려서부터 점선을 따라 그리고 빈 칸에 색칠하는 교육을 답습하다보니 자기 생각이 없다는 것. 박 교수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라면 작가의 사고와 생각을 담아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 보랏빛 소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여자라면 힐러리처럼’이란 책에는 ‘보랏빛 소’ 이야기가 나온다. 한 가족이 자동차로 프랑스를 여행할 때 아름다운 풍경에 젖어 있다 지루해질 쯤 목장의 보랏빛 소를 발견한다. 그날 여행 중 가장 시선을 끈 것은 아름다운 전원이 아닌 보랏빛 소였다. 미국 여성 정치가 힐러리 클린턴은 자기만의 색깔로 자신만의 매력을 만들어갔다. 이른바 ‘신비주의 전략’이다.
박미정 교수는 “많은 사람이 기억하는 너만의 컬러를 가지라고 학생들에게 항상 강조한다. 비주얼도 경쟁력이다. 검정색을 쓰더라도 그러데이션(gradation)이나 명도의 차이를 둠으로써 나만의 독특한 컬러를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나의 30대는 ‘머리에 안경을 얹은 강사’, 40대는 ‘스카프가 잘 어울리는 교수’, 50대는 ‘탈색 헤어의 유니크한 교수’라는 이미지다. 뷰티숍 원장이나 메이크업 교수가 예쁘고 곱디고운 여자라는 평가는 사양한다. 나만의 캐릭터, 장점이 드러난 전문가처럼 보이는 게 좋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박미정 교수의 메이크업 테크닉은 무엇일까? 그는 “메이크업은 얼굴의 황금비를 테크닉으로 풀어내야 호감 가는 인상을 줄 수 있다. 호감은 사랑과 성공을 부른다”고 말한다.
“연예인은 얼굴 비율에 따라 메이크업이 최적화되어 있어 ‘연예인 따라 하기’는 일반인에겐 외려 어울리지 않는다. 눈 사이가 멀면 눈썹을, 눈이 작으면 타원형 아이라인 등으로 위장(camouflage)해야 한다. 또 자신만의 컬러와 개성이 드러나야 한다”고 말한다.
#3 삶을 메이크업하다
박미정 교수는 페이스페인팅 아티스트(Face Painting Artist)다. 아시아페이스페인팅총연합회 회장으로 ‘2016 대한민국창조혁신대상’의 뷰티디자인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2008년 창립된 아시아페이스페인팅총연합회는 민간단체로 활동하다 2014년 정식 문화관광부 소속 사단법인 아시아페이스페인팅협회로 발족했다. 2008년 대구에서 열린 '월드바디페인팅페스티벌'을 유치하기도 했다.
페이스페인팅은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전 국민이 사랑하는 이벤트 행사로 자리 잡았다. 박 교수는 “자신의 의지와 내면의 의미를 표출하려는 욕구에서 페이스페인팅이 발달했다”며 “작가와 대중의 쌍방향적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행위와 참여 모두 가능해 대중문화예술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페이스페인팅의 매력은 ‘나를 표현하는 컬러와 정체성 확립’이다. 축구응원단 ‘붉은악마’의 붉은 색은 스포츠와 문화, 페이스페인팅을 대중문화로 연결시키는 통로가 되었다. 얼굴과 몸에 페인팅하고 응원하는 모습이 일반화됐다는 것은 페이스페인팅이 친화적 이벤트이자 정체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확장성이 크다는 것을 알려준다.
박미정 교수의 지난 이력은 팔색조라고 할 만큼 컬러플하다. 연기자→공연전문가→어린이집원장→에어로빅 강사→대학로 연극 분장→뮤지컬 메이크업 아티스트→페이스페인팅 아티스트→교수의 길을 걸었다. 원래는 아역 배우를 거친 안양예고 출신의 연기자였다. 동기는 탤런트 김혜선. 후배가 김민종·남희석 등이다.
박 교수는 “‘오브리(obligato)란 따로 정해진 악보 없이 음악 흐름에 맞춰 즉흥 반주하는 사람으로 그만큼 실력과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며 “나의 이력이 한 편의 ’오브리‘였다”고 술회했다.
그가 회장으로 있는 아시안페이스페인팅협회는 전문가 포함 회원이 4만명으로 일본·대만·필리핀 회원도 있다. 페이스페인팅자격증 소지자 중에 국내 70%는 박 교수의 제자 또는 제자의 제자다.
박 교수는 “페이스페인팅의 매력은 신체에 새로운 가치를 표현해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만나게 해준다”며 “정체성을 바꾸거나 또는 그 정체성에 적합하도록 현실 세계를 변화로 이끌 수 있다”고 말한다. 매년 열리는 오스트리아 ‘월드바디페인팅페스티벌’과 ‘대구국제바디페인팅페스티벌’은 행위예술이자 대중문화의 중심지로 그의 주요 활동무대다.
작년 1월에는 화려하고 다양한 색감을 얼굴과 몸 전체에 페이팅해 몽환적 세계를 표현한 ‘삶을 메이크업 하다’ 전시회를 개최해 화제를 모았다.
박미정 교수는 “K-뷰티 색조화장품 발전을 위해 가성비 좋은 제품과 콜래보는 물론 페이스페인팅 퍼포먼스를 할 생각”이라며 “페이스페인팅이 K-뷰티의 글로벌 진출 시 홍보 효과가 뛰어날 것”이라며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