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창소설] 인식의 싸움 102. 모델 선발 대회(10)

다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여섯 시간이나 걸려 경주에 도착한 영업부와 예비 점장들의 얼굴은 피곤한 기색도 없이 마치 소풍 온 어린 아이들 마냥 활짝 즐거운 표정이 왁자지껄 펼쳐지고 있었다. 일행은 경주에서도 유명한 최고급 호텔에 짐을 풀었다. 
   
  평소 최상무는 다른 건 몰라도 유통조직을 동기부여하기 위해서는 그들을 최고로 대우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최고로 대우해야 그들이 최고가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경비를 절약해야 한다는 회사 측 입장과 충돌하기도 하였지만, 최상무는 이에 굴하지 않고 초지일관 자신의 주장대로 해왔다. 사실 이런 특급 호텔비용은 앞으로 그들에게 지불할 판촉비에 비하면 세발의 피였다. 오히려 이럴 때 화끈하게 대우하고 판촉비를 절약하는 것이 회사로서는 더 큰 이익임을 최상무는 잘 알고 있었다.
    
  신팀장도 오늘만은 모든 걸 다 잊고, 다시 영업시절로 돌아가 마음 편히 있고자 하였다. 짐을 풀고 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미 여러 잔의 술이 돌았지만, 마음이 편해서인지 천년의 고도 경주에 와서 그런지 술이 전혀 취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1차가 끝나고 2차로 맥주 한잔을 더 하고 나서야 비로소 사람들은 뿔뿔이 헤어졌다.
      
  신팀장은 오랜만에 만난 영업소장들과 함께 2차를 하러 자리를 옮겼다.

  “신팀장, 내일 교육해야 하는데 이렇게 술 마셔도 괜찮겠어?” 문지점장이 말했다.

  “제가 원래 음주공부해서 대학 나오고, 술 마시고 난 다음 날 음주운전 면허증도 땄고,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다 음주로 이루어져서인지 술을 마셔야 일을 더 잘한답니다. 하하하~”
     
  서로들 가벼운 마음으로 우스개 소리를 나누며 서너 잔의 맥주를 마셨을 뿐이었는데, 갑자기 신팀장은 정신을 못 차리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최근 병원과 회사를 오가며 여러모로 힘든 일에, 때론 야근에 때론 밤샘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였던 지라, 경주에 와서 잔뜩 당겨져 있던 긴장이 일순간 풀어지자 그는 맥을 턱 놓고 말았던 것이다. 
    
  그곳에서 조금 더 맥주를 마시고 나서야 일행들은 간신히 신팀장을 이끌고 나와 숙소까지 그를 부축하여 와서 자리에 눕혔다. 다음 날 아침 아무런 기억도 못하는 신팀장을 보며 사람들은 몰래 빠져 나와 어디서 뜨거운 밤을 보냈냐는 등 농짓거리를 했다. 그는 말도 안 된다며 그저 웃어 넘겨 버렸으나, 최근 몸이 자주 적신호를 보내는 것 같아 한편으론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조차도 사치스러운 일일 뿐이었다. 
    
  오전 10시부터 2시간에 걸쳐 신팀장은 인상적인 프레젠테이션을 하였다. 다들 어제 과음한 후라 교육에 집중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던 진행팀의 염려를 깨끗이 날려 버리고도 남았다. 신팀장은 단순히 자료를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동영상과 애니메이션, 그리고 음악효과를 활용하여 고객들이 원하는 정보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들이 쉽게 이해하고 간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들었다. 점장들은 열화와 같은 박수와 함께 역시 교육부터도 뭔가 믿음이 가고 다르다는 말을 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그때였다. 교육 중에 꺼놨던 신팀장의 휴대폰이 켜지기 무섭게 벨이 울렸다.

  “신팀장, 교육 끝났는가?” 민이사의 목소리가 불편하게 흘러 나왔다.

  “네, 이사님, 막 끝나고 점심 식사하려고 합니다.”

  “그럼 식사 후에 바로 올라 오게. 거기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잖은가?”

  “하지만 이사님, 아직 오후 일정도 있고, 돌아가는 차편도 없는데요?”

  “차편이 없으면, 그냥 비행기 타고 당장 와! 거기서 놀고 있을 때가 아냐!”
      
  민이사는 영업과 함께 있는 신팀장이 계속 꺼림칙하다고 느꼈으며, 이런 영업과의 단체활동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팀장은 깊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이사님. 아마 포항이나 울산 쪽에 비행기가 있을 것입니다. 바로 알아보고 연락 드리겠습니다.”
  신팀장은 갑자기 입맛이 사라져 식사도 하지 않고 최상무와 지점장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이 상한 최상무도 함께 나서며 민이사와 당장 통화하겠다는 것을 간신히 말리며, 그는 호텔 프론트로 가서 비행기 편을 알아봤다. 마침 포항에서 4시에 김포행 비행기가 있다고 하여, 그는 택시를 잡아타고 경주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향했다. 갑자기 차창 밖으로 후두둑 비가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점점 굵어져 차창을 강하게 때렸다.
     
  ‘이 비가 답답한 내 마음도 함께 씻어내 주었으면…’

  신팀장은 쏟아지는 비를 바라보며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어젯 밤의 과음과 아침부터 열띤 강의로 피곤한 몸이 버스의 굉음 속으로 파 묻혀 점차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 계 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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