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생활건강 차석용 부회장은 2005년 취임 이후 ’LG그룹 최장수 CEO‘, ’승부사‘, ’M&A 귀재‘, ’미다스의 손‘이라는 명성을 얻고 있다. 하지만 그를 잘 아는 측근이 소개한 차석용 부회장의 진면목은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이다.
차석용 부회장의 리더십은 △5무(無) △할리우드 피치 △란체스터 법칙에서 잘 드러난다.
한 언론 인터뷰에서 차석용 부회장은 술, 담배, 골프, 회식, 의전(儀典)을 모르는 생활 패턴을 전했다. 그는 오전 7시에 출근해 4시까지 보고를 받고 퇴근한다. 회식을 싫어한다. 이 때문에 LG생활건강의 직원 회식비는 1끼 점심값에도 부족할 정도로 책정된다.
지난해 12월 22일부터 1월 1일까지 LG생활건강 전 직원은 연말 특별 휴가를 받아 업계의 부러움을 샀다. 이는 LG그룹 구광모 회장이 LG생활건강의 성과를 치하하며 성과급과 함께 특별휴가를 지시한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연말 결산으로 바쁘다고 할 텐데, 업무에 차질 없는 것은 평소 차 부회장의 경영방침이자 생활습관 요구로 가능했다.
차 부회장은 ’일‘에 집중한다. ’일‘ 이외로 회사에서 회식, 술자리, 모임을 갖는 기회를 극도로 싫어한다. 이에 대해 차 부회장은 “미국 CEO의 경우 업무에 집중하고 인맥 확장 같은 일은 최소화한다. 한국식 호탕함이나 보스 기질은 내게 안 어울린다”고 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차 부회장은 4시 일과 후에는 책을 읽는 등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애쓴다. 시간이 나면 차라리 백화점이나 거리 상점을 기웃거리며 최신 트렌드를 직접 체험해본다. 회사에 늦게까지 남아 일을 하진 않는다”고 전했다.
차석용 부회장의 보고 스타일은 ’할리우드 피치‘를 선호한다. 피처(picher)란 시나리오 작가, 캐처(catcher)는 프로듀서나 제작사, 경영자다. 할리우드 피치는 ‘피처가 캐처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설득력 있게 피치(던지다)하는 것’을 말한다.
할리우드에서 아티스트라면 외모나 옷차림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행동 역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 특징은 ’변덕, 괴짜 기질, 예측 불가, 열정, 극단, 불명료. 세련되지 못한‘ 등으로 이런 성향을 보이면 ’창의성‘이 높다고 평가한다.
제작자는 짧은 미팅에서 어떻게 작가의 창의성을 평가할까? 제작자는 자신이 가진 ‘창의성 원형’과 작가의 시나리오를 비교한다. 제작자가 아이디어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작가는 ‘창의성’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이를 위해 작가는 제작자와 창의성을 공유하며 협력자 관계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피칭을 계속할 수 있다.
할리우드 피치에 담긴 아이디어는 엘리베이터 한 번 타는 동안 설명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해야 한다. 이는 30초 광고 길이와 얼추 맞는다. 할리우드 감독이자 제작자인 스티븐 스필버그는 “25단어 이내로 영화의 아이디어를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좋은 영화일 겁니다. 저는 손안에 쥘 수 있는 아이디어를 좋아합니다”라고 말한다. 엘리베이터 피치(elevator pitch)를 할리우드에서는 하이 콘셉트(high concept)라고도 한다. 차 부회장도 A4 1장에 모든 것을 담기 원한다.
회사 관계자는 “차석용 부회장의 광고 효과에 대한 감은 제일이다. 광고 매체 선정, 콘셉트와 효과까지 계산하는 정교함이 치밀해 광고 전문가들조차 혀를 내두른다”고 설명했다.
차석용 부회장은 란체스터 법칙(Lanchester's laws)의 신봉자다. 전투에서 승패는 투입 총량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으로, 이를 마케팅에서는 초기 시장점유율 우위를 차지한 기업이 향후에도 우위를 차지한다는 내용이다. 기업이 신제품 개발과 초기 점유율을 올리려 사활을 거는 것도 란체스터 법칙에 따른 전략 선택이다.
차석용 부회장은 2005년 부임 후 생긴지 2년밖에 안된 ‘후’에 공격자원을 집중했다. ‘후’는 한방→‘궁중’으로의 콘셉트 차별화와 함께 당시 한류스타인 이영애를 모델로 발탁했다. 상해 빠바이빤(八百伴), 쥬광(久光), 북경의 SKP 등 1선 최고급 백화점을 중심으로 입점했으며, VIP 마케팅으로 중국 여성의 고급화, 고소득화 추세를 겨냥했다.
차석용 부회장은 더페이스샵 인수로 일거에 매스시장을 장악했고, ‘후’를 2조원 브랜드로 키워냄으로써 단기간 내 글로벌 10대 브랜드로 올리는 성과를 올렸다. 란체스터 법칙인 수자(守者)를 이기려면 공자(功者)의 화력은 제곱이어야 함을 증명해냈다.
항간에서 “차석용 부회장은 M&A로 덩치를 불려 운 좋게 성과를 낸다”는 질시 섞인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그를 오래 지켜본 측근의 평가는 “워낙 다독가인데다 정보수집이 뛰어나며, M&A의 경우 오래전부터 기획하고 두드려보고 결행하는 냉정한 승부사”라고 말한다.
차석용 부회장은 2012년 이후 내수 경기침체와 소비 위축 등으로 시장의 정체성을 예견했다. OEM·ODM사의 확장으로 신규 브랜드 진입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 등 치열한 상황을 염두에 뒀다. 유통망도 정부의 가맹점 신규 출점 제한으로 성장이 정체되고 온라인 등 디지털 채널 구매 확대 등의 환경변화도 간파했다. 이때부터 LG생활건강은 해외시장 진출을 가속화했다.
2012년 긴자스테파니, 2013년 에버라이프에 이어 작년에 에이본재팬, 에바메루를 인수하면서 일본에서의 화력을 보강했다. 2019년 에이본의 중국 공장을 인수하면서 중국시장에서 글로벌 제휴와 인프라 확보라는 기회를 포착했다.
차석용 부회장은 2019년 연임 첫 해를 예의 M&A로 스타트했다. LG생활건강을 한국-일본-중국을 아우르는 아시아 화장품 최대기업의 맹주로 성장시키려는 걸까? 그의 원모(遠謀)가 궁금하다.